이장욱(38)씨는 1994년 등단한 시인이다. 01년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민음사)을 냈고, 현대시학 작품상을 탔다. 근래의 젊은 시인들이 즐겨 기대는 지음(知音)의 원군(비평가)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그가 소설을 썼고, 그 작품으로 ‘2005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다.
소설은 화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지하철 역사에서 일어난, 두 건의 자살사건과 한 건의 사고살인 이야기다. 토요일 새벽 한 남자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숨진 사고 현장에 대한 풍경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그 희생자와 전혀 무관한, 경미한 두통과 함께 몇 초 후의 세계를 미리 느끼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한 여자의 일상으로 소급된다. 화요일 오후. 지하철을 타려던 여자는 10초 뒤의 상황에 맞춰 발을 내딛다 플랫홈에 진입한 열차에 부딪쳐 숨진다.
이틀 뒤 사고 열차의 기관사가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한다. 유년 시절 자신의 역할 모델이던 쌍둥이 형을 교통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는 그는 모방행동 증후군을 앓아왔다. 기관사의 옛 애인과, 삼각 관계였던 또 다른 동창생 남자도 등장한다.
기관사의 빈소에서 해후한 두 사람은 학창시절 드나들던 카페에 들렀다가 함께 밤을 보내고 토요일 새벽 지하철역으로 들어선다. 마침 복권판매소 주인인 외팔이 사내가 맞은 편에서 걸어온다. 아내를 잃고 나흘째 잠을 설친 사내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여자와 부딪치고, 남자는 그를 거칠게 밀쳐버린다. 밀쳐진 그에게 부딪쳐 열차를 기다리던 제3의 남자(토요일의 희생자)가 선로에 추락한다. 이야기는 소설 첫 장의 사고살인 현장으로 이어진다.
전혀 무관한 세 명의 희생자가 각기 다른 정황으로 한 지점에서 숨지는 기막힌 우연. 하지만 그 우연의 이면에는 실핏줄처럼 얽힌 필연의 사슬들이 존재한다. 뒤집어보면 그 필연의 메커니즘 역시 우연의 연속임도 상식 속에서 해명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미묘한 타이밍에 이루어”(73쪽)“지고, 어찌 보면 “인생이란 게 일종의 사고의 연속일 뿐”(76쪽)이며, 그래서 “그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인간은 결국 운명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121쪽)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에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지중해의 파라솔을 흔드는 바람의 각도”가 “갑자기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196~197쪽)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삶이란 필연도 우연도 아닌, 그렇다고 필연이나 우연이 아닌 것도 아닌, 해석도 설득도 불가능한 무엇이다. 작가는, 삶은 주체의 의지나 이성적 인과율의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우연과 그 우연이 배태되는 필연의 사슬들로 겹겹이 어긋나고 얽혀 존재하는 것 아니냐고 소설 속에서 반문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나름의 논리로 우연과 필연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존재의 어긋난 시선들은, 발달장애를 앓는 소설 속 첫 희생자의 아이의 시선처럼(아이는 시각기능만 있고 인지기능은 박약하다) 공허한 것일까. “아이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사물을 바라보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이의 세계에는 다른 사람이 살지 않았고 외계의 사물들은 그저 희미한듯했다.”(31쪽) 그래서 우리는 결국, 혈육이 없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동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는 갈라파고스의 자이언트거북 ‘조지’들인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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