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과 운문사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경북 청도에 그렇게 많은, 양질의 감이 난다는 사실 앞에, 기자는 과문(寡聞)을 통감해야 했다.
상주 곶감이 워낙 유명하니 같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사한 류의 농사를 짓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동대구역을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청도 권역으로 진입하면서 무지에 찬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져야 했다.
감 천지도 그런 감 천지가 없었다.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가로수조차 감나무 일색이어서 심상찮은 풍경을 예고하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승용차로 갈아타고 도심으로 들어가니 예감은 에누리 없는 현실이 돼 가고 있었다. 감, 감, 그리고 또 감….
초등학교 교정에서도, 대중 교통이 미처 닿지 못 하는 오지 마을에도, 감은 잔치술로 불콰해진 농부의 얼굴을 한 채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청도에서 수확한 감은 2만 톤이 넘는다.
국내 18%, 경북 지역 55%에 해당한다. 당연히 국내 최대 규모이다. 청도의 가을은 감 천지다. 씨가 없으니 먹기에 좋고, 당도는 꿀이 서러울 정도다.
잘 갈무리된 청도의 감은 그냥 홍시가 아니라 반시(盤枾)라 불린다. 접시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해 붙은 이름이다. 반시는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감나무를 뽑아 다른 지역에 심으면 감 안에 씨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없지만, 청도가 지닌 특이한 토양이 미친 영향이라고 한다.
회수(淮水)를 경계로 귤이 됐다, 탱자도 된다는 고사가 절로 생각난다. 16세기 이 고장 출신의 평해 부사 박호가 중국에서 건너 온 감나무 묘목을 고향 청도에 심었다는 고사가 효시로 전해 온다.
그 좋다는 청도 감이 이름 값을 못 해 온 까닭이 있다. 종자적 특성으로, 수확하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홍시로 변하는 때문이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곶감에 비해 보존 기간이 턱없이 짧을 수밖에.
게다가 한꺼번에 출하되니 제값을 못 받는다는 사실 또한 단점이었다. 전국 최고임에도 이름값을 못 하는 데 대한 마음의 상처도 컸을 터이다.
하지만 이 고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소싸움을 자신들의 대표 브랜드로 만든 주인공 아닌가. 특유의 온고지신 정신은 감을 만나서는 감물 옷, 감 와인, 감 말랭이, 아이스 홍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속속 선보이고 있다. 전국 최고의 명성 되찾자는 몸짓이다.
이서면 고철리 예던길따라(054-372-8314)는 감 즙을 이용, 옷감에 들이는 웰빙 아이템으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광목에 감물을 들인 뒤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4~5차례 거쳐 황토색 옷감을 완성하는 데, 짧게는 15일, 길게는 한 달이 걸린다. 감물에 약간의 색소를 가미하니 푸른색, 노란색 등 알록달록 옷감이 된다.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옷 한 벌 값이 10만원을 훌쩍 넘지만 탄닌 성분이 아토피성 피부염 예방에 탁월하다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년간 8~10톤에 달하는 옷감을 의복은 물론 가방, 커튼, 침구, 손지갑, 차받침 등 응용 제품으로도 만들어 판로를 넓히고 있다. 주말마다 갖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독특한 아이템으로 호평 받고 있다.
감으로 만든 와인 ‘감그린’도 눈길을 잡는다. 감 특유의 탄닌 성분이 심장병과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주로 자리잡았다. 지난 해 한국 전통 식품 선발 대회에서는 동상을 받기도 했다. 청도와인 (054)371-1100.
아이스 홍시도 탄생했다. 영하 50~60도에서 급속 냉각한 덕에 영양소가 전혀 파괴되지 않고 모양도 그대로다. 적당히 해동한 뒤 스푼으로 떠먹으면 아이스크림 대용으로 그만이다.
감 1개에 성인 하루 비타민 A, C 권장량이 들어 있으니 별도의 영양 보충이 필요 없다. 경청영농조합법인 (054)373-6784. 감말랭이는 홍시보다는 딱딱하고 곶감보다는 부드러워 성인들의 주전부리 거리로 제격이다. 감말랭이 영농조합 (054)372-5335
청도=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