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이란 한 세기를 이어 가며 일관되게 유지돼 온 가치를 말한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건과 실화가 인터넷 뉴스를 꽉 메우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일정 수준의 가치를, 십년도 이십년도 아닌 백년 동안 지켜가기란 쉽지가 않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 가치를 지켜내는 일에 별 도움을 못 준다.
신문지 사이에 끼어 들어 오는 광고 전단지를 보자. ‘100년 전통의 맛’이라는 둥 ‘100년을 이어갈 서비스’라는 둥 상투적인 문구들이 쉽사리 사용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우리 주위에 100년 동안 변치 않은 가치가 그 얼마나 되는가.
얼마 전 해남으로 차를 달리던 나는 ‘산이 주조장’이라는 허름한 간판을 보고 들어선 일이 있다. 탄탄한 체구에 사람 좋은 웃음,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이 쨍쨍 하시던 양조장 주인장은 47년간 그 곳에서 막걸리만 만들어 오셨다 했다. 47년째 막걸리만 만들어 오신 그 분의 술은 정말 맑아서 마치 갓 발효시킨 유기농 야쿠르트를 마시는 것 같았다.
정정한 펜 글씨로 일력을 뜯어 적으신 연락처와 내 손에 쥐어 주신 뒤뜰의 홍시 두 알을 보면서 또 다른 47년을 이어 갈 후계자가 없으니 이 술은 이제 사라지는가 아쉬워 하셨다.
100년 전통을 시작했던 세대는 그것을 이어 갈 후대에 목말라 있지만 나랏말조차 인터넷에 편한 줄임말로 고쳐버리는 젊은 세대가 과연 ‘짱나는(짜증 나는)’ 전통 따위에 어느 만큼의 가치를 두고 지켜줄 것인지 의문이다.
♡ 떡갈비
논밭을 함참 달려 해남 읍내에 들어서면 매일 시장이라는 골목 사이로 ‘천일 식당’이란 간판이 보인다. 언뜻 보면 허름한 집 한 채일 뿐이지만, 그 자리 그 집에서 근 100년째 떡갈비를 만들고 있기에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저력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니 키 작은 나무가 있는 마당에 아이들이 놀고, 미음(ㅁ) 자의 집을 두르고 있는 열 간 정도의 방 안에는 떡 벌어진 남도 밥상을 두고 행복해 하는 어른들로 꽉 찼다. 문이 활짝 열린 부엌에서는 연탄불에 끊임없이 구워내는 떡갈비 냄새가 막 풍겨 나온다.
부엌 속은 할머님 몇 분이 연탄불에 죽 둘러 앉아 떡갈비를 착착 뒤집느라 분주한데, 뿌연 연기가 가득하여 그 실루엣만 언뜻 언뜻 보일뿐이다. 풍만하게 내리 쬐는 9월의 남도 햇살에 식욕은 돌고, 기다림 끝에 떡갈비와 추가로 주문한 곡주 한 잔을 앞에 두니 ‘남도 아리랑’이 절로 나올 지경.
순도 100%의 한우만을 정성껏 다져 짜지도 달지도 싱겁지도 않은 완벽한 비율의 양념을 한 덕에, 연탄불에 구워 내는 그 맛이 주는 감동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해산물을 팔거나 월동 배추를 다 팔아치운 100년 전의 어느 상인이 이 식당에서 제공하는 한 끼로 자축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식당의 담 너머로 솔솔 풍기던 그 냄새가 상인의 힘을, 입맛을 돋우었으리라. 시간은 흘러 갔어도, 그 맛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진다.
♡ 달팽이
100년 전통을 이야기 하다 보면 오래된 여관과 절도, 오래된 주조장의 술도 있겠다. 또 오래 된 방앗간과 나무가 있는 남도 이야기로 한없이 지샐 수도 있겠다. 더 흥미로운 화제를 찾아 프랑스 파리로 나는 간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 같은 이 곳에서는 국제화된 도시답지 않게 ‘100년 전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도시의 100년 전통들은 지금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최고의 보물들이기에 잘 보호 되는 덕도 있다. 그러나 일찍이 그 보물들의 가치를 알고 손쉽게 허물어 버리지 않은 조상들의 예지가 부럽다.
파리의 한 가운데에는 레알(Les Halles)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는데, 서울로 치면 종로와 같은 곳이다. 여러 선로의 지하철이 교차하고 사람들로 북적대며 중저가의 상점이 많은 지역.
레알은 몇 백 년 전부터 파리의 시장이 있던 곳으로, 종로나 청계천 쪽의 ‘육의전’처럼 각종 노점을 비롯해 농수산물의 거래까지 이뤄졌던 곳이다. 에밀졸라의 ‘파리의 중심(Le Centre de Paris)’에 등장하는 시장 바닥이 바로 오늘의 레알이다.
레알의 시장은 이제 멀티 플랙스가 들어선 쇼핑가로 변했지만, 둘레에 위치하던 100년 전통의 밥집들은 간간히 남아있다. 샤르띠에(Chartier)나 삐에 드 꼬숑(Le Pied de Cochon)이 그런 레스토랑이다. 고기를 팔아 치운 상인이 기분 좋게 달팽이 한 접시를 어 치우고 이어 주문한 스테이크에 디종산(産) 머스터드를 듬뿍 발라 맛있게 배를 채웠던 100년 명소인데,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성업중이다.
올 여름 파리 출장 중에 다시 들른 샤르띠에는 여전히 바쁘고, 저렴하고 맛있었다. 이 곳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두 명씩 온 사람들은 오장동이나 마포 대포집 마냥 테이블을 합쳐서 앉아야 한다. 그래도 모두들 즐거운 모습. 왜냐? 맛있으니까, 그리고 변하지 않으니까.
초(秒) 단위로 바뀌는 화면에 눈이 익숙한 우리. 그러나 입맛만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식으로, 천연 조미료로, 사찰 음식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재미있다.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우리는 우주복을 입고 무균 상태의 도시를 거닐지 모른다. 100년 전통의 맛이었다는 을지로의 곰탕집은, 종로의 설렁탕집은 단지 전설로 남은 채 말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전통의 맛을 더 즐기고, 더 잘 지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든다.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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