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개정된 선거법상 ‘거소(居所)투표’ 조항 때문에 10ㆍ26 국회의원 재선거가 초반부터 부정선거 시비로 얼룩지고 있다. 투표율 제고에 매달려 각종 부정이 개입될 여지를 간과했던 정치권은 정작 문제가 생기자 상대방에 대한 의혹 제기에 몰두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자신의 거주지에서 투표를 하는 거소투표의 문제점은 대리투표 및 매표(買票)에 대한 우려, 헌법에 보장된 비밀투표 위배 가능성 등이다. 이는 개정 선거법에서 부재자투표 대상자가 크게 늘어난 데다 이번 선거가 별도의 부재자 투표소가 마련되지 않는 재선거인 탓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거소투표는 1988년에 도입됐다. 총선과 대선 때는 부재자투표자 대다수가 선거구별로 마련된 부재자투표소를 이용했고, 거동이 힘든 중증장애인과 노인 등만 거소투표를 했다. 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지 않는 재보선에선 부재자신고자 모두가 거소투표를 했다. 이때만 해도 거소투표 대상자가 극히 적어 부정선거 시비는 없었다.
하지만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부재자투표 대상자가 군인과 경찰, 중증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서 ‘선거 당일에 투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으로 대폭 확대된 데다 부재자투표소가 별도로 설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재자신고를 한 8,700여명이 모두 거소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 당시에는 별다른 논란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모두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만 착안, 부재자투표 대상자를 늘리는 데 논의를 집중했다. 정개특위 위원이던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사실 총선과 대선의 투표율 제고만을 의식했을 뿐 재보선의 구멍을 못 본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문제점은 부재자신고 때부터 표면화했다. 12일 울산에선 13명의 부재자 신고서를 본인 동의 없이 접수시킨 정모(45)씨가 검찰에 고발됐다. 경기 부천 원미갑에서도 대리 접수된 신고서 539매가 논란거리가 됐다. 대리접수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본인의 동의가 없었다면 문제가 된다.
앞으로 부재자투표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투표과정을 감시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통상 재선거 투표율이 30% 안팎임을 감안할 때 부재자투표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어 접전 지역에서는 각 후보진영이 매표와 대리투표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야는 13일 법 개정 의사를 밝혔지만, 이번 재선거는 부정선거 가능성을 그대로 안고 치러야 할 상황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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