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한 한국인의 사망원인 통계에서 자살사고가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로 나타났습니다. 1년에 인구 10만 명당 25명이 자살로 숨지고 있는데 매일 32명 꼴로 자살사고가 일어나는 셈입니다.
또 20,30대 연령층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10~50대까지 골고루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살사고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극심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생명 존엄성을 경시하는 풍조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학적으로는 그 원인으로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에서 우울병을 지목합니다.
우울병 증세는 몇 주에 걸쳐 천천히 발생합니다. 말수가 적어지고 밥도 덜 먹고 위축되며 행동도 굼뜨고 잠들기 힘들거나 자주 깨게 됩니다. 반대로 식욕이 올라가서 체중이 늘고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는 비전형적인 증세도 있습니다.
우울병 환자는 생각도 느려지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평소 해오던 집안일이나 사회활동 같은 자발적인 활동을 그만두게 됩니다. 또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자연히 기억력도 급격히 나빠져서 노인층에서는 치매와 혼동되기도 합니다.
이런 슬픈 감정에 지속되면서 죄책감과 후회감에 사로잡혀 지내다가 절망감에 빠져 외로운 나머지 무력한 느낌에서 결국 죽음과 자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든지 자살 충동이나 준비를 한 적이 있다면 가장 심각한 상태에 들어 간 것입니다.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면 우울병 환자의 최대 15% 정도가 자살을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이런 상태가 되면 즉시 입원해서 환자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치료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모든 우울병 환자가 이와 같이 점점 심해지는 경로를 밟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서는 이런 증세가 정도는 덜하지만 몇 년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눈에 뛰는 우울감정이 없고 피로감이나 통증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몸에 병이 없는지 각종 검사를 반복해서 받느라고 여러 의사를 전전하기도 하지요.
모든 병에는 예방이 최선이듯이 자살사고도 예방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보이는 사람이 정말 심한 우울병을 앓고 있는지 확인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한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를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예방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선 우울병을 앓는 사람은 스스로 병원을 찾는다든지 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또 피로감과 통증 등 각종 신체증상을 많이 갖고 있다 보니 병원을 찾아도 신체 질병을 의심하여 검사를 받게 되고 우울병을 앓는지 잘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해서 신체증상 뒤에 숨어 있는 정신증상이기 때문에 일찍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병이 깊어질 때까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지요.
또 심한 우울병을 앓고 치료를 받고 있더라도 자살 충동 같은 극단적인 심리 상태는 숨기고 있어서 경험 많은 의사도 적극적인 예방 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우울병은 현대 사회에서 아주 흔한 병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환자의 20% 정도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약 10%는 치료를 요할 정도의 증세를 갖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도움을 받아야 할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혹시 없는지 관심을 갖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예방하는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옆에서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일상의 미세한 변화도 알아챌 수 있는 가족이 존재하고 그 기능을 다한다면 불행한 결과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 붕괴되고 남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자살 사고, 반드시 줄여야 하겠습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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