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농산물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세부과를 금지하는 ‘관세상한(關稅上限)’ 규정이 도입되는 등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이 우리나라에 매우 불리한 방향으로 급진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제6차 WTO 각료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농업협상 세부원칙이 채택돼 이르면 2007년부터는 관세 인하 등 지금보다 훨씬 큰 폭의 농업개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세가 인하되면 시중에 유통되는 마늘, 고추 등의 가격하락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이지만, 국내 관련 농가에는 연간 5,000억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된다.
농림부 배종하 국제농업국장은 12일 “이달 초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WTO 주요국 각료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관세상한 규정이 포함된 세부원칙 초안을 제시하는 등 미국과 EU의 의견대립으로 교착 상태였던 농업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배 국장은 “세율 100% 이상 고관세 품목이 47개에 달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관세상한의 도입을 막기 위해 그동안 일본, EU 등과 함께 공동 전선을 펴왔다”며 “EU의 태도 변화로 매우 불리한 국면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농림부에 따르면 미국은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농산물 관세를 70% 이상 매기지 못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EU는 선진국과 개도국에 각각 100%와 150%의 관세상한 설정을 주장하고 있다. DDA 협상을 좌우하는 양대 축인 미국과 EU가 70~150% 범위에서 관세상한을 설정키로 합의할 경우 우리나라는 주요 고관세 품목의 세율을 상한선까지 대폭 끌어내려야 한다.
농산물 관세가 내려가면 수입 농산물 가격이 그만큼 하락, 일반 소비자들은 싼 가격으로 더 많은 물량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생산 농가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현재 관세율이 270%에 달하는 고추의 경우 관세상한이 설정되면 값싼 외국산 수입고추에 밀려 재배면적이 급감하고, 관련 농가의 연간 소득이 2005년 7,200억원에서 2010년에는 3,600억원 내외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또 관세율이 360%인 마늘 역시 2005년 2,300억원 대로 예상되는 농가수입이 2010년에는 1,400억원대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 상태라면 미국ㆍEU가 제네바에서 접근시킨 세부원칙이 12월 홍콩 각료회의에서 채택되고, 내년 6월말까지는 세부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 타결 후 6개월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2007년부터 농산물 시장도 전면적인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곡인 쌀은 지난해 타결된 관세화 유예 협상에 따라 DDA 농산물 협상과는 무관하게 매년 의무수입물량(MMA)을 일정부분 늘리는 수준에서 2015년까지 10년 동안 시장 개방이 연기된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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