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북 상주에서 벌어진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11명과 수십 명의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공연장 안전사고로 관객이 죽는 일이 반복되어도, 안전을 볼모로 한 안이함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발생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슬프고 화가 나면 누군가를 탓하게 마련이다. 도대체 이런 전근대적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MBC, 상주시, 국제문화진흥협회, 경찰, 경호업체, 심지어 빨리 입장하려고 남의 등을 떠밀었던 공연 인파까지 포함한 모두가 조금씩의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속은 좀 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 열 한 명이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죽음을 당했는데 도덕 교과서의 정답만 찾는 것도 온당하진 않은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의 핵심으로 MBC를 주목하는 것은 사고 관련 기관 중 가장 가시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중소도시 공무원이나 낯 선 협회 임직원보다는 ‘방송국 사람들’이 훨씬 빠르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물론 사건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일은 경찰과 검찰의 일이다. 그들이 사고의 주체와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주리라 기대하자. 누구 잘못인지는 밝혀질 것이고, MBC가 혹여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다면 조사결과가 해명해줄 것이다.
그런데 MBC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번 사건의 끝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유독 MBC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MBC의 최문순 사장체제가 출범하던 7개월 전, 바로 이 난을 통해 최문순 신임사장에게 한국 방송계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공헌해줄 것을 기대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까지 평가되던 MBC를 수렁에서 건져줄 수 있으리라는 바람에서였다. 그리고 삼순이와 금순이가 등장했다.
MBC도 드디어 생기를 되찾는 듯 했다. 그러던 차에 6월의 ‘파워TV’ 편집조작 사건, 7월의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 노출사건, 8월의 ‘뉴스데스크’ 영상자료 오보사건이 일어났다. 중간에는 브로커의 금품로비 사건도 있었다.
마땅한 대표적 교양정보 프로그램을 내놓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청률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와 코미디는 두 자리 수를 기록하기도 버겁게 되었다. 드라마 ‘가을 소나기’는 3%대라는 사상 초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100억원 짜리 대작이라던 ‘신돈’ 역시 지지부진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전 보도국 간부의 신용카드 도용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방송사고나 낮은 시청률보다 이 사건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국회의원 출마 예상자로까지 거론되었던 방송사 간부가 범죄나 다름없는 사건에 연루되었는데도 석 달 동안 별다른 인사조치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다른 사안으로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 판결까지 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국정감사에 나온 방송문화진흥재단 이사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대답했다니, 이 인사 시스템이 최문순 사장이 강조했던 ‘혁신’의 결과인가.
이번 상주에서의 참사를 논하면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처럼 “전적인 책임은 MBC에게 있다”는 식의 억지를 부릴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각 대표자가 공교롭게도 처남-매부 지간인 상주시와 국제문화진흥협회에 사건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의 성명서에 공감한다.
하지만 같은 성명서가 잘 지적했듯이, MBC도 그냥 해명만 하고 말 입장은 절대 아니다. 이전에 있었던 ‘가요콘서트’ 지방 녹화 때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는 네티즌들의 지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MBC가 관여된 사고가 줄줄이 터지는 것은 단지 우연인가?
안 그래도 의기소침해 있는 MBC와 최문순 사장에게 너무 가혹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일련의 사건과 사고들을 불운과 억울함으로만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맑은 정신을 되찾기를 바란다. 자성하고, 그 다음 개혁하고, 그 다음 발전하라.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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