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보다 뭔가는 낫겠지 하다가도 아차 싶을 때가 있다.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는 재벌급 부호라 그런지 이유 없이 한 수 아래로 내려다 봤다. 그가 최근 경제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2단계 공무원 감축을 추진, 향후 1년간 중앙 공무원수를 최대 5만명까지 줄이겠다는 ‘뚝심’을 보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가 ‘우정개혁’을 걸고 중의원을 해산할 때만 해도 ‘헨진(變人.괴짜)’이 벌이는 요란스런 ‘정치도박’ 정도로 폄하했다.
하지만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지난 4일 ‘우정개혁’에서 더 나아가 향후 4년간 국가공무원수를 2만7,681명 줄이겠다는 야심찬 ‘정원합리화계획’을 내놓았을 때는 뭔가 둔중한 것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부는 올 정기국회에 221조4,000억원(추경예산 제외)에 달하는 2006년도 예산안(세출)을 제출했다. 올해 대비 6.5% 증가된 금액이다. 특히 사회복지 예산은 올해 보다 10.8% 늘어난 54조7,000억원을 차지했다. 2년 연속 10% 전후의 급증세를 타며 전체 예산의 4분의 1에 육박한 것이다. 통일.외교 예산은 무려 36%나 급증했다.
늘어난 사회복지 예산은 어디에 쓰이는가. 노인, 장애인, 아동 등 고전적 의미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보다는, ‘저소득층 지원’이니 ‘사회적 일자리’라는 명목으로 변형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데 중점 투입된다. 경제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신 ‘언 발에 오줌누는 식’으로 복지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급증한 통일.외교 예산은 노무현 대통령이 ‘위업’이라고 자찬한 6자회담 타결에 따른 ‘통일비용’으로 대부분 투입된다. 정부 여당은 ‘분배는 정의’이고, ‘통일은 당위’라며 예산 증가를 ‘감당해내야만 하는 부담’이라고 강변한다.
다 좋다 치자. 문제는 늘어나는 예산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이냐는 것이다. 예산은 원래 경제성장에 맞춰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경제성장은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추락했고, 기업이 몰리고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세수기반이 크게 약화해 자연스럽게 세수(稅收)를 늘릴 여지가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결국 세금을 더욱 쥐어짜낼 수 밖에 없게 됐고, 심지어 월급쟁이들의 소득공제까지 내년부터 대폭 축소키로 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자못 비장한 ‘정의와 당위’를 뒷받침하기 위해 월급쟁이에게까지 세금을 쥐어짜내야 하는 서글픈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태국이나 일본처럼 정부가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수는 2만6,000명이나 늘었다. 장.차관 자리도 21개나 증가했다. 공무원 인건비도 예산 보다 1조2,700억원이 초과 지출됐다.
이렇게 공무원이 늘어나는 가운데 재정에서 전액 보전해야 하는 공무원 및 군인연금 적자분은 향후 10년 치만 따져도 현재가치로 3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쯤 되면 더 내는 세금이 못사는 사람들과 나눠 쓰고 통일을 준비하는데 쓰이기는커녕, 늘어난 공무원의 월급과 연금 맞춰주기에도 부족할 판인 셈이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연말연시에 받는 100만원 남짓한 소득공제 환급금은 짭짤한 보너스나 마찬가지다. 밀린 외상값 갚고, 설날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용돈을 챙겨드리는 밑천이다.
경기회복에서 낙제하고 대책 없이 공무원수만 늘려놓은 현 정부가 ‘딱한 이상주의’를 내세우며 쌈짓돈에까지 염치없게 손을 내미는 상황은 참기 어렵다. 취임 후 혁신의 깃발을 높이 들고 노타이 차림으로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누비던 노 대통령은 어디 있는가. 납세자들은 분노해야만 한다.
장인철 국제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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