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아프간에 가서 테러리스트들과 싸워라…이라크에서 독재를 끝내라…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주고 이스라엘에는 안보를 줘라”
하나님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말씀하셨다는 계시다. 나빌 사아스 전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중동 평화협상을 다룬 영국 BBC 2 채널의 다큐멘터리에서 2003년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렇게 들었다고 전했다.
언뜻 황당하다. 그러나 BBC와 저명한 다큐 제작자를 신뢰하는 영국 언론은 부시 대통령의 지난 언행에 비춰 놀랄 게 없고, 오히려 백악관이 계시 발언을 부인한 것이 불경스럽다고 논평한다.
●자기확신 집착은 자신에도 위험
이런 논평의 핵심은 부시의 대외정책이 기독교적 신념에 기초,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편견에 치우친다는 흔한 비판이 아니다. 그보다 부시가 받았다는 계시가 자신의 대외정책 행보와 일치하는 점을 주목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현실적 이해를 타협한 외교정책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계시한 것은 경이롭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이해와 개인적 신념을 좇는 대외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계시 발언은 웃어 넘길 에피소드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의 종교적 신념은 탓할 수 없지만, 자기확신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의 정책결정을 소명(召命)으로 인식하거나 부각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부시의 대외정책은 국제 평화질서와 미국의 국익에 이바지한 증거는 없는 반면, 숱한 희생과 국론 분열을 강요했다. 나라 안팎에서 부시의 신뢰가 추락한 현실이 소명의식의 위험을 입증한다는 지적이다.
이쯤에서 얘기를 우리 대통령의 소명 쪽으로 돌리면, 터무니없다고 화낼 것이다. 그러나 지역구도 해소를 역사적 소명으로 여긴다는 대통령이 대연정에 집착하는 모습은 객관적 평가는 아랑곳 없이 자기확신에 집착하는 부시와 닮았다. 대연정 구상이 결국 사회와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에 이를 것으로 믿는지 모르나, 아직은 모두에게 위험한 집착으로 비친다.
대통령과 측근이 폄하한 여론의 지지가 낮은 사실만으로 혹평하는 게 아니다. 대연정의 미덕을 입증하는 사례로 독일을 자꾸 거론하는 것이 불안하게 보여서다.
독일의 상징성에 기대는 심리는 이해하지만, 그들도 40년 전 잠깐 경험한 뒤 부정적으로 평가한 대연정을 굳이 본받으려는 억지 논리를 끝내 지탱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독일이 다시 대연정을 앞둔 사실도 애초 왜곡된 논리를 보완하는데 도움될 것은 없다고 본다.
1960년대 대연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소개했다. 거기에 덧붙일 것은, 2차 대전 직후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대연정이 거론됐을 때 전통의 좌파 사민당이 정체성을 위해 스스로 야당을 선택한 사실이다.
승전국 미국의 영향아래 우파 기민당과 집권 연정을 이룰 경우, 좌파이념과 국민의 민족주의 정서를 돌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독일의 정치세력은 그렇게 역할 선택을 한다. 최근 총선 뒤 좌우의 소수정당 자민당과 좌파연합당이 연정 불참을 선언한 것도 정체성을 좇는 행보다.
●현실정책 국민지지 확대가 중요
독일에서 연정이 일상화한 것은 다양한 계층으로 나뉜 국민의 정당 지지가 이념 스펙트럼을 따라 폭 넓게 갈리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그 지지가 한층 넓고 엷어져 좌우의 국민정당 기민당과 사민당 어느 쪽도 주도적으로 집권하지 못한 것은 두 당의 경제사회 개혁정책이 모두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결과다.
따라서 대연정은 엇갈리는 계층적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렇게 독일 정치가 실패한 결과인 대연정에 우리 대통령은 크게 감명 받았다니 시비하기도 지친다.
노 대통령이 독일에서 먼저 배울 것은 현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넓혀야 한다는 교훈이 틈耐?싶다. 이게 힘겹다고 대뜸 소명을 앞세워 정치구도를 바꾸는 구상에 집착해서는 부시처럼 이기적 속내를 이내 간파 당하기 마련이다. 국민과 여론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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