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갈 때마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의 변화한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젠 북한에서 사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지난 1일 평양에서 남북 첫 합영기업(주식회사)인 ‘평양대마방직’의 창업식 행사를 가진 김정태(63) 안동대마방직 회장은 북한에서 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변화는 이번 방북 기간 중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회장 일행 중에는 장애인 사업가가 2명 있었는데, 북한 당국은 이들을 위해 승용차를 따로 준비하고, 행사기간 내내 이들의 휠체어를 밀고 다닐 정도로 성의를 보였다고 한다. 처음 평양을 방문하려 했던 2001년, 방문자 1인당 5만 달러의 ‘머릿세’를 요구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어서 김 회장 자신도 몹시 놀랐다고 한다.
또 평양 인근의 대마 재배농가에서 농부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농부가 “비료는 중국보다 남조선 제품이 좋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북한 관리가 “쌀밥도 남조선 쌀밥이 훨씬 맛있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칠 정도로 태도가 확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임가공업 만으로는 북한 경제에 어떠한 진전을 이룰 수 없으며, 제조업이 들어와야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3년 반 동안 북한 관리들을 설득한 끝에 합영회사를 세울 수 있었다”며 “모든 산업의 기초인 섬유산업이 성공해야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사업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우리는 북한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실제 북한의 중심인 평양에서는 어디서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며 “제조업이 진출해야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북한에서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1999년 한 탈북 청소년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당시 김 회장은 두만강 접경 지역에서 미국의 천주교 봉사단체인 ‘프란치스코 형제회’ 소속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굶어 죽은 뒤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을 넘어왔다는 한 탈북 청소년을 만나게 됐고, 김 회장은 그에게 연탄 리어카를 구해줬다. 하지만 탈북 청소년이 연탄 리어카를 끌고 북한으로 되돌아가며 남긴 한마디는 김 회장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도 기술이 있다면 이렇게 구걸하며 살지는 않을 겁니다”
김 회장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북한에서 대마(삼베) 사업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당시 중국에서 운영하던 공장이 질이 좋지 않은 중국산 대마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가짜 제품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던 점도 김 회장의 결심을 재촉하게 했다.
이후 김 회장은 두만강 인접 지역에 머무르며 북한을 오가는 조선족 사업가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북한 관리들에게 사업계획서와 대마 종자를 건넸고, 3년이 지난 2002년 12월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산하 새별총회사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처음부터 합영회사 설립을 주장했지만,북측은 먼저 임가공공장을 세우자고 제의했다.
김 회장은 성에 차진 않았지만, 이후 다시 설득해보기로 하고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던 3,000여평 규모의 공장을 섬유공장으로 개조했다.
이어 대마 종자를 평양,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자강도 등의 농가에 나눠준 뒤 시범재배를 통해 수확한 대마로 실과 천 제조에 들어갔다. 김 회장의 열정은 북측을 움직였고, 결국 이듬해 9월 새별총회사와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설립에 합의하게 됐다.
김 회장은 “그 동안 북한의 경제특구에 많은 사업가들이 진출했지만, 하나같이 다 망해서 돌아갔다”며 “이는 아직 자본주의에 익숙치 않은 북한 사람들에게 경영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평양에 있는 제1공장의 경우 근무시간에 따라 임금을 3단계로 차등 지급하는데,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 야근을 자청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북한에서 성공하려면 이처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경영 마인드가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산 대마는 국산 대마 만큼 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북의 값싼 노동력과 결합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1981년 실크 제조업을 하던 중 한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대마 극찬론’을 듣고나서부터 25년간 대마를 연구해온 김 회장은 현재 대마 섬유에 관한 3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가 2000년에 만든 ‘삼베 팬티’는 제9회 섬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북한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에서 판매해 올린 매출은 총 30억원. 하지만 김 회장은 북한 동대원 구역에 짓고 있는 1만2,000평 규모의 제2공장이 올해 말 완공되면 3년 후 연간 3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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