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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獨총리/ 獨대연정 합의… 첫 여성총리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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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獨총리/ 獨대연정 합의… 첫 여성총리 탄생

입력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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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당수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힘겨루기로 한 달 가까이 계속된 독일의 정치공백이 대연정 타협으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의 기민-기사련(CDU-CSU)과, 슈뢰더의 사민당(SPD)의 담판 결과는 ‘권력의 양분’으로 요약된다. 언뜻 총리를 차지한 기민-기사련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민당은 16개 각료직 가운데 외무, 법무, 재무, 노동 등 노른 자위를 포함, 환경, 건강, 교통, 개발 장관 등 8개 장관을 차지했다. 정권을 사실상 나눠가진 셈이다. 유권자 사이에서 정권교체 열망이 있었던 점, 사민당이 제2당인 점을 감안하면 도리어 기민-기사련측의 양보가 눈에 띈다는 지적도 있다.

대연정 이후의 과제는 병든 독일 경제를 얼마나 빨리 되살리느냐 하는 것. 독일 국민이 양당에 대해 타협을 요구한 것도 첫번째 대연정(1966년~69년)을 통해 불황을 극복했던 경험을 떠올려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약 12%), 25개 유럽연합(EU)회원국 중 가장 낮은 성장률(1%) 등 독일의 경제 지표는 온통 빨간 불이다.

하지만 나눠 가진 권력으로 경제개혁이 가능하겠냐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친 기업 성향의 정책을 추진해 온 중도 우파 기민-기사련과,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도 좌파 사민당의 ‘불안한 동거’가 공통 답안을 만들어 내려면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하다.

선거전에서 메르켈은 해고 요건 완화 등 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고 소득세율을 12~39%까지 내리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것이라 약속했다. 하지만 재무장관(예산권)을 사민당에게 넘겨준 만큼 얼마나 추동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외신들은 후속협상에서 양측이 경제정책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뢰더가 실패한 것도 고용보장제도의 골격은 유지하면서 사회복지비용을 줄이려는 애매한 정책 때문이었다.

당장 재계는 협상결과에 대해“사민당이 정책의 발목을 잡아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고, 노조도 “메르켈 정부는 가난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다만 양측은 선거전부터 공감했던 재정개혁은 무리 없이 추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은 경제에 비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 때 양측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인 터키의 EU가입 문제는 일단 가입 찬성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외무성을 사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메르켈이 대미 관계 개선이라는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지 주목된다. 경우에 따라선 총리와 외무장관 간의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대 유럽연합(EU) 외교를 놓고도 과거 슈뢰더는 프랑스와의 독불연대를 중심축으로 삼은 반면, 메르켈은 영국과의 관계개선을 공약해 시각차가 눈에 띈다

박상준 기자 buttopr@hk.co.kr

■ 독일 대연정의 역사/ 1966년 첫 시도… 3년간 경제 살려내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출범 이래 좌·우파 핵심정당 간의 ‘대연정’(Grand Coalition)은 66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66년부터 69년까지 만 3년을 채우지 못한 첫 번째 대연정은 집권 기민-기사련과 야당이었던 사민당과의 정권 수립이었다. 당시 총리는 기민당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였고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69년)가 맡았다.

당시 대연정의 특징은 이번 대연정과는 달리 총선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60년대 들어 경제불황이 심해지면서 실업자가 늘어나자 49년부터 기민-기사련과 함께 보수연정을 펼치던 자민당은 예산안을 적자 편성하는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며 결국 내각에 파견했던 4명의 장관을 철수시키며 연정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의회 해산’은 선언되지 않았고 당시 총리였던 에르하르크만 사퇴했다. 결국 17년 동안 야당이던 사민당이 대연정을 제안하며 최초로 대연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부흥을 일궈낸 기간으로 평가되는 66~69년 대연정은 69년 9월 6대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기민-기사련에 이어 2당이 된 사민당이 자민당과 좌파연정을 통해 집권하면서 깨지게 됐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 끈기·결단력 겸비 독일판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51) 기민당 당수는 오는 18일 의회에서 선출되는 형식을 거쳐 독일에서 최연소, 첫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된다. 동독 출신의 개신교도로 친기업, 친미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의 별명은 ‘독일의 대처’. 유약한 이미지와 달리 끈기와 과감한 결단력을 무기로 정치경력을 쌓으면서 독일판 ‘철의 여인’이란 평을 얻었다.

1954년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90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89년 동독 민주화 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정치에 첫발을 디딘 그는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이후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발탁으로 91년 여성청소년부장관, 94년 환경부장관에 올라 그의 ‘정치적 양녀’란 말도 들었다.

98년엔 총선에서 패한 기민당 사무총장을 맡고, 2년 뒤엔 여성 당수로 등극하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당수직 ‘기용’은 비자금 스캔들을 모면키 위한 당 지도부의 선택이었지만, 메르겔은 이를 당내 아웃사이더에서 주류가 되는 기회로 삼았다. 권력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이며 2002년 당수에 재선출된 그는 올해엔 총리 후보 지명전에서도 성공한다.

한편으로 순탄한 길을 달려온 그의 정치이력은 개인적인 인내와 우연의 결과로 채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강한 집념과 승부사 다운 결단력이 남성중심의 ‘마초 세계’에서 그가 성공한 비결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그는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치하지 않았고, 또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한 적도 없다. 그러나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영국 병’을 치유한 것처럼 메르켈이 독일의 높은 실업률과 사회의 비관주의를 털어내고 성장을 이끌어 낼 지에 대해 독일사회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가 대처가 아니고, 지금의 독일은 70년대의 영국과 판이하기 때문이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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