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대재앙급 지진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서남아시아의 쓰나미(지진해일) 이후 발생한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지진만 10개나 된다. 지진공포는 선진국에서 더할 만큼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일본에선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80년 주기설’에 따라 도쿄 대지진이 임박했다는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대지진이 ‘9ㆍ11 테러’, 허리케인 참사에 이은 세 번째 재앙으로 기록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지진은 지구를 이루는 13개 지각판이 서로 부딪히면서 축적된 에너지가 표출돼 발생한다. 지각판의 충돌은 판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인데, 강진은 주로 인도양판과 태평양판이 다른 판과 충돌하는 경계면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인도양판의 북쪽과 동쪽 경계에 위치한 서남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남아시아, 중동에 이르는 지역은 세계적인 참사의 아픈 기록을 지니고 있다.
올해 집계만 해도 10대 지진 가운데 무려 6개가 인도양판이 유라시아판과 부딪히는 이 지역에서 집중 발생했다. 지난해 12월26일 쓰나미를 발생시켜 23만여명이 숨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연안 지진 역시 인도양판이 유라시아판을 들어올리면서 발생했다.
현재 인도양판은 유라시아판을 수평상태로 밀거나, 유라시아판 밑으로 들어가면서 충돌하는 것으로 미 지질조사국 등은 파악하고 있다.
충돌은 인도양판이 매년 4~5㎝씩 동북 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그 경계면에 언제든 강진을 일으킬 정도의 에너지가 다량 축적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북부 접경지대는 경계면 가운데 가장 위험한 히말라야 지진대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에선 리히터 8이 넘는 지진만 해도 1897년 이해 4차례 발생했고, 7.5 이상의 지진은 지난 100년간 10차례 넘게 관측됐다.
인도 지질학자들은 “이번 지진은 인명피해는 크지만 지진 규모(리히터 7.6) 자체는 전혀 놀라운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진원이 진앙 지표면으로부터 10㎞에 불과해 1,000㎞ 떨어진 곳에서도 지진을 느낄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일부 지진학자들은 “향후 수십 배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강진이 갠지스강 하류 인구 밀집지역에서 발생하면 사망자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히말라야 지진대는 환태평양 지진대, 알프스 지진대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속한다. 인도양판과 유라시아판이 서로 밀어올려 형성된 2,400㎞에 이르는 히말라야 지진대에는 히말라야 산맥, 세계 제2봉 K2가 있는 카라코람산맥, 파미르고원, 힌두쿠시산맥 등이 포함돼 있다.
지진의 최대 난점인 예측과 관련해, 일부에선 태양 흑점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이 가설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의 기상학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자와할랄 네루대학의 사우미트라 무크헤르지 교수는 “자석과 쇠 사이에 종이가 놓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흑점변화로 바깥 에너지 덩어리가 지구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연구결과 지진은 흑점의 변화가 발생한지 24~36시간 뒤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1만3,000여명(추정치)이 사망한 2001년 1월26일 인도 구자르트주 강진(리히터규모 7.9) 발생 이틀 전에도 흑점의 변화가 관측됐다.
당시 흑점 변화 이후 세계에서 65차례의 지진이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 "심판의 날이 온 줄 알았다"
“‘심판의 날’이 온 줄 알았다.” 8일 오전(현지시간) 파키스탄과 인도 접경 카슈미르 산악지대를 친 강진에서 용케 살아남은 이들은 “세상이 끝나는 것만 같았다”고 악몽의 순간을 전했다.
파키스탄, 인도, 아프가니스탄의 피해 지역은 지진이 휩쓸고 간 뒤 쑥대밭이 돼버렸다. 지옥 같던 찰나는 지나갔지만 충격의 여파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아직도 무너진 폐허 더미 속에 수 많은 희생자가 매몰돼 있어 피해는 계속 늘 전망이다.
지진 발생
8일 오전 8시50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땅이 흔들리더니 10층 짜리 마르갈라타워 아파트 2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 9ㆍ11 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듯한 모습에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같은 시각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뉴델리와 카불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면서 대피소동이 벌어졌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동쪽으로 95㎞ 떨어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행정수도 무자파라바드는 순식간에 도시의 모습을 잃었다. 리히터 규모 7.6으로, 파키스탄 역사상 강도나 규모에서 가장 큰 이번 지진의 진앙이다.
인구 12만5,000명의 무자파라바드에선 시 스타디움을 비롯한 관공서 건물 대부분과 주택 절반 이상이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무너져내린 집 잔해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깔렸다.
가까스로 집을 빠져 나온 이들은 길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거나 단층주택을 찾아 뛰었다. 지진이 산사태까지 몰고 오면서 카슈미르 산악의 마을은 거의 초토화됐다.
2분 가까이 지속된 강진이 지나간 뒤에도 여진이 45차례 이어지면서 하루종일 지진 공포는 끝날 줄을 몰랐다.
피해 상황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 북부, 인도령 카슈미르까지 피해 지역이 넓고 위력이 워낙 커 정확한 희생자 집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외신들은 현지 정부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 1만9,000여명~3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구조가 본격화하면 인명 피해는 더 늘 수도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내무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무자파라바드에서 약 1만1,000명이 숨지는 등 최소 1만9,136명이 사망하고 4만2,397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앞서 샤우카트 술탄 파키스탄 군 대변인은 CNN 방송에서 “1만8,020명이 사망하고 4만1,188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60년 가까이 분할 점령하며 분쟁을 벌여온 비극의 땅 카슈미르는 이번에 대재앙의 희생양이 됐다.
최대 피해지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였다. 타리크 파푸크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노동통신장관은 이곳에서만 3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추산했다.
행정도시 무자라파바드는 1만1,000여명이 죽어 거리에 시신이 나뒹구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병원들도 파괴돼 부상자들은 오갈 데가 없는 참혹한 상황이다.
때마침 수업이 시작되던 학교에서도 대규모 참사가 잇따랐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발라코트에선 초등학교와 중학교 여학교 등 학교 3곳이 모두 무너졌다. 무너진 한 공립학교에서는 학생 약 200명이 건물 잔해 더미에 깔렸고, 한 사립학교에선 650명이 붕괴된 4층 건물 폐허에 묻혔다.
땅속에서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접근로가 모두 붕괴되어 만 하루가 지나도록 구조대원은 찾아볼 수 없다. 학부모들은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건물더미를 헤집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인도령 카슈미르의 국경도시 우리에선 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인도도 360명이 사망하고 900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아프간 동부에선 11살짜리 여자아이 1명이 무너진 집 잔해에 깔려 사망했다.
군인의 희생도 컸다. 인도 접경지인 히말라야 산맥에서는 매몰된 참호에서 군인 39명이 몰살하는 등 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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