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국민의 정부 시절 집권당인 민주당의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도청을 지시한 2000년 말은 민주당 소장파와 권노갑씨 등 동교동계 실세들이 격돌하던 때였다. 당시 최고 실세였던 권씨는 소장파의 요구로 결국 2선 퇴진까지 했고, 이 사태는 2001년 민주당‘정풍(整風)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2000년 4ㆍ13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온 초선 중심의 소장파는 당정쇄신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정난맥의 원인이 동교동계의 전횡에 있다”며 인적 청산도 요구했다. 이호웅 송영길 김태홍 이재정 정범구 김성호 장성민 등 당시 여당 내 소장파의원 모임이었던 ‘새벽21’이 이를 주도했다.
그 해 8월30일 최고위원 경선에서‘신 40대 기수론’으로 당선된 정동영 최고위원이 전면에 나서면서 쇄신운동은 거세졌다. 그는 12월 2일 청와대 최고위원 만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권노갑 최고위원이 있는 자리에서 권씨의 ‘2선 후퇴’를 요구했다. 동교동계의 전횡과 이권개입 등을 문제 삼아, 실질적인 2인자의 퇴진을 주장한 것이다. 이틀 뒤 12월4일엔 ‘새벽21’이 당정쇄신건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후 민주당은 ‘친권(親權)-반권(反權)’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내홍에 빠져들었다. 결국 12월17일 권씨가 최고위원직 사퇴를 발표하면서 일단락 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 3월 권씨가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동교동계가 다시 전면으로 등장했고, 그 해 5월 신기남 천정배 송영길 의원 등이 당정수뇌부의 전면쇄신을 재차 요구하는 등 정풍쇄신 운동이 다시 일어났다.
이 시기 국정원은 민주당 소장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도청을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김성호 전 의원은 9일 “당시 소장파 활동은 공개적이었는데 도청을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도청이 있었다면 김은성씨가 권씨에 과잉 충성하는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당시 김씨가 나를 만나 정풍 주장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소장파 도청 얘기도 수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