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인들의 일 처리가 한국에 비하면 참 느리고 급한 게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난 연말 한국에 갔을 때 은행에 들렀는데 50여 명이 내 앞 번호를 갖고 있었다.
그래도 30분 정도 지나니까 내 차례가 될 정도로 신속하게 일 처리가 됐다. 반면에 여기 은행은 일곱 명 정도만 앞에 있어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군소리 한마디 없이 잘 기다린다.
처음엔 기다리는 것이 답답해서 그냥 나온 적이 많다.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지만 일단 담당자를 만나면 친절하게 하나씩 일처리를 해 주고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에 만족해 하며 차례를 기다린다.
이민 초기에 여러 가지 서류일 때문에 관공서에 전화로 약속시간을 잡는 일부터 이곳에서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몇 번 전화를 돌려도 자동 응답으로 기다리게 만들더니, 결국 한 달 뒤 약속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약속 시간까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다시 번호표를 뽑아 1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려고 해도 2달 전에 필기시험을 예약해야 하고, 시간이 정해진 상태에서 시험장에 도착한 뒤에도 그때부터 번호표 뽑고 1시간은 기다려야 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1년이 지나야 실기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고도 꽤 여러 번 전화를 걸어서 1달 뒤의 시험 날짜와 시간을 잡았던 기억도 난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 예약도 역시 한 달 전에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 3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하고 연락해야만 낭패를 보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여기 몬트리올 사람들은 이렇게 기다리는 생활이 익숙해서인지, 타고난 성품인지, 참 불평 없이 잘 기다린다. 음식점에서, 은행에서, 화장실에서, 슈퍼에서, 정거장에서, 어디서나 줄지어서 기다리는 모습이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가끔 기분 좋은 광경을 볼 수 있다. 차들이 줄 지어 서행할 때 무슨 일인가 해서 보면 신호등이 고장 나 있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교통 순경도 없이 한 쪽씩 양보하면서 차례차례 지나가는 것이다.
약간은 더디게 갈지 모르지만, 어떤 막힘도 사고도 없이 통행이 가능하게 하는 여유로운 현명함이 보인다. 그럴 때면 문득 ‘한국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경희, 캐나다 몬트리올 거주,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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