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궁지에 몰렸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치권, 시민단체,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뭇매를 맞는 형국이다. 그 중에서도 엊그제 내려진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은 결정타다.
대한민국 초일류기업의 부의 승계가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법원의 판단은 저간의 ‘삼성 때리기’의 강도를 훨씬 넘어서는 충격이다. 삼성으로서는 창업 이후 최대의 위기국면으로 느낄 법도 하다.
검찰 수사가 재개되면 경우에 따라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마당이다.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절반의 승리’에 잔뜩 고무된 참여연대 등 반 삼성 진영의 공세도 한층 거세질 게 뻔하다. 배임혐의가 인정된 것을 근거로 삼성 계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삼성공화국’ 타도를 위한 나팔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는 데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집단적인 삼성 때리기가 이제 비틀기, 조르기 수순으로 들어간 것 같다”며 “숨이 막혀오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사면초가의 위기는 삼성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삼성 공화국에 대한 비난의 근저에는 재벌 가의 편법 상속이라는 삼성의 ‘원죄’가 도사리고 있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CB, 비상장 주식 등을 헐값으로 피상속자에게 넘겨 상속세를 피하는 것은 요즘 기업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소위 합법적인 절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일반화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이번에 유죄 판결이 난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당시만 해도 국세청은 이런 증여방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CB 인수를 통한 합법적 증여라는 묘수를 처음 찾아낸 것은 삼성의 법무 팀이었다. 삼성으로서는 국가기관의 촘촘한 세금 그물을 뚫고 상속세를 크게 줄였으니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이윤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기업의 생리상 절세 시도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세금 몇 푼 줄이기 위해 편법을 썼다가 그 몇 십 배의 금전적 불이익과 이미지 손실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경영진의 무신경과 윤리의식의 결여다.
국민들은 삼성을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으로 인식하고 초일류기업에 걸 맞는 공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정작 삼성 경영진의 의식은 개인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상식적인 법 판단을 무시하고 형식적 법 논리만으로 묘수를 찾으려 했던 시도가 부른 결과는 참담하다.
‘교보와 대한전선의 상속세 납부액이 각각 1,338억원, 1,355억원인데 교보의 11배, 대한전선의 97배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의 증여세 총액이 16억원’이라는 국감 자료 앞에서 ‘절세에 성공한 삼성’을 칭찬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삼성은 이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1등 기업답게 부를 관리하고 상속하는 방법에서도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자가 써야 할 돈을 쓰지 않거나, 남들 만큼의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을 때 돌아오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교육과 문화 국토보존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한 사회 환원도 더 활발히 전개해야 한다. 증여세를 절세해 얻은 이득을 사회에 돌려 주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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