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여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에 살던 21살의 흑인 여성 노마 매코비는 ‘제인 로’라는 가명으로 카운티 검사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낙태 합법화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형편이 어려워 이미 2명의 아이를 입양시켰던 그녀로선 세번째 아이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었다.
캘리포니아 등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에서 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 이 사건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낳으면서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고, 1972년 1월22일 마침내 낙태를 허용하는 그 유명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판결이 나오게 된다.
▦이 판결이 새삼 주목을 끈 것은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로서, ‘재능이 너무나 풍부해 하나의 통합 주제에 집착하는 것이 아까운’ 30대 천재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이 2001년 발표한 논문 때문이다.
올 여름 우리나라 서점가를 풍미한 ‘괴짜 경제학’의 저자인 그는 여기서 “‘불우한 환경’의 여성들에게 낙태를 허용한 이 판결로 인해 범죄 예비군의 탄생이 원천적 봉쇄됨으로써 90년대 중반 이후 범죄율이 급감했다”는 주장을 폈다.
당연히 보수진영은 분개하고 진보진영은 대경실색했다. ‘인종개량론자’라는 오명도 썼다. 그는 이런 비난은 감수해도 ‘치안정책의 승리’라는 통념에 기대어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런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레이건 정부에서 교육부장관, 부시 정부에서 식품의약국장을 지낸 윌리엄 베넷이란 사람이 라디오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범죄 감소가 목적이라면 모든 흑인 아기를 낙태시키면 된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여론의 역풍에 직면하자 “학술서적에도 나오는 말”이라고 ‘괴짜경제학’을 들이댄 것이다.
이로 인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짜 세상’의 치부를 들춰내는 그의 학자적 양심과 혜안은 또 한번 시달렸다. 그렇다고 엄밀한 데이터로 말하는 그의 결론이 뒤바뀔 리는 없겠지만.
▦약간은 상심했을 법한 레빗에게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등장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90년대 초 법무차관으로 국가소송을 담당하면서 ‘로 대 웨이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뒤집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인물인 까닭이다.
타계한 랜퀴스트 전 대법원장이 그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의 일원으로 반낙태 의견을 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만약 새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문제의 판결이 뒤집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레빗 주장의 진위를 검증하는 시간도 성큼 다가올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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