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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첫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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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첫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출간

입력
2005.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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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등단한 소설가 천운영 씨가 첫 장편 ‘잘 가라, 서커스’(문학동네)를 내놨다. 그는 ‘사랑, 그 따뜻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의 말’에도 그렇게 썼다. “설렘이나 매혹이나 열정이 아닌, 위안으로서의 사랑” 이야기라고. 그런데 그 위안이 단순하지가 않다. 등장 인물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엇갈리거나, 잘 나가다가 어긋나고, 끝내 좌절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한국으로 시집 온 25살 조선족 여인 ‘해화’와 시동생 ‘나’가 번갈아 이야기를 이끌며 주변의 삶들을 끌어들이는 형식이다. ‘나’는 ‘어릴 적 사고로 언어ㆍ정신 장애를 앓게 된 형과 당뇨병으로 다리를 잃은 노모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다. 소개업소를 통해 형의 결혼을 성사시킨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다.

‘해화’에게는 어린 날의 정인이 있다. 그는 살 길을 찾아 일찌감치 한국으로 떠났고, 해화는 불법체류자로 떠돌 그를 가슴 귀퉁이에 품고 산다. 그런 해화를 ‘나’는 속으로 갈망하게 되고, 그 불온한 욕망이 두려워 집을 떠난다.

이야기는 해화가 집을 나와 떠돌다 ‘약’에 젖어 드는 과정, 아내를 잃은 형이 끝내 자살하는 과정, 모두 사라진 뒤 집을 팔고 어머니의 유골함을 바다에 던지는 ‘나’의 내면 등이 스산하게, 먹먹하게, 처절하게 전개된다.

‘사랑의 위안’이라면 그 엇갈림과 어긋남의 전(前) 순간들, 그 기억들이 남긴 느낌일 게다. 하지만 상실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그것이 따뜻한 것이어도, 아니 따뜻해서 더더욱 상처로 침전되기 쉽다.

그것을 두고 작가는 ‘상처도 사랑’이라고 했다. “잠시 들었던 품속, 잠시라도 받았던 위안,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그러니 위안은, 현재적 충족감과 달리 늘 사후적으로, 과거형으로만 성립된다.

소설에서 ‘서커스’는 서사의 계기이면서 고국을 떠나 한국에 온 이들의 생활에 대한, 보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외줄에 매달린 삶, 위태롭고 정교한 기예, 그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성공이 실패에 밀착돼야 한다.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서커스. 그것이 진짜 서커스다.”(6쪽) 소설 끄트머리에 놓인, “잘 가라, 어디든지. 잘 가라”(248쪽)는 ‘나’의 읊조림은 위안으로 남은 상처로서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긍정이자, 진짜 서커스이지 못했던 모든 사랑에 대한 작별의 인사로 읽힌다.

6일 간담회에서 작가는 “주인공들과 함께 하는 동안 행복했다”고, “내 소설이 따뜻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년 전 어느 식당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의 사연을 듣고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국가나 체제이념 등에 연루된 거대담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그들과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더라고, 그러자고 뱃길로 13~14시간씩 걸리는 중국을 세 차례나 드나들며 그들의 분위기를 익히고 사연을 듣고 말을 배웠다고 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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