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유행 중인 ‘조류독감’이 21세기판 전염병의 경고등을 켰다. 조류독감으로 인해 최대 1억5,000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 가운데, 이번에는 20세기 초 전세계를 휩쓴 살인적인 ‘스페인독감’이 인간에 전염된 조류독감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연구진은 1918년 최대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복원해 유전자 분석에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조류독감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당시 21세와 30세의 나이에 스페인독감으로 숨진 미 병사와 알래스카에 묻힌 여성 등 모두 3명의 신체조직에서 독감 바이러스 파편을 추출, 유전자를 재배열해낸 것이다. 과학전문지 ‘네이처’와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내용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H1N1)는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과 달리 조류독감의 변종이었다.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일반 독감 바이러스와 달랐다. 일반 독감 바이러스는 감염시키지 않는 폐 세포를 감염시킴으로써 살인적인 전염병이 됐다. 이처럼 스페인독감 바이러스가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4,400개 아미노산 중 0.5%에 해당하는 25~30개가 변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이 유전자 가운데 10개를 제외하면 오늘날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스페인독감과 거의 일치한다. 연구진은 10개에 불과한 변이 유전자의 차이 때문에 오늘날 조류독감과 달리 1918년 스페인독감은 인간 간에 직접 전염이 가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조류독감도 변이가 계속돼 인간 대 인간 전염이 가능한 살인독감으로 돌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예측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의 첫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뒤 조류독감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들어 피해가 집중 발생한 인도네시아는 5일 사망자가 1명 추가되면서 7월 첫 조류독감 감염자가 나온 지 석 달 만에 7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금까지 11개국에 퍼져 70여명이 숨졌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간에 직접 전염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심각성이 간과된 편이다. 그러나 지난달 말 세계보건기구(WHO)가 조류독감 피해자가 세계적으로 74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며 경고음을 내고 각국도 백신 확보에 나서는 등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4일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군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각국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감염 조류를 살처분하는 방법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서 고민이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예방백신을 개발 중이나 아직 실험단계에 불과하고, 더욱이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연간 3억 명 분의 백신이 필요하지만 대량 생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백신이 필요한 아시아 빈국들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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