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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청계천엔 한강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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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청계천엔 한강 물이 흐른다

입력
2005.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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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 세상은 변한다. 환경 인식도 변하고 청계천에 대한 시민 정서도 변한다. 악취가 풍기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개골창이었던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었을 때, 그리고 그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했을 때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시민과 언론매체가 이번에는 청계천 복원에 찬사를 보냈다.

어떤 이유로든 처음 3일 동안 180만 명이나 구경할 정도의 명소로 등장했지만, 청계천의 모습은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의 노수홍 교수나 원로문인 박경리 여사가 그린 풍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름부터 복원되지 않았다. 원래 개천(開川)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대대적 준설공사를 벌이고 나서 새로 붙인 이름이 청계천이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가 되살아났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을 뜯어낸 자리에 들어선, 자연의 냄새만 풍긴 인공 수로를 보면서 ‘개천 복원’이 아니라 ‘청계천 복원’이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청계천의 물조차 맑은 계곡의 자연수가 아니다. 지하수가 섞이기는 했지만, 정수한 한강 물이 흐른다. 한강 물을 퍼 올려서 불과 한 자 남짓한 수심을 유지하는 데만 막대한 양의 전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청계천엔 시민의 세금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복원 공사에도 엄청난 세금을 썼지만 앞으로의 유지 관리에도 세금은 계속 들어갈 게다. 청계천 복원은 시민의 담세 능력 덕분이다. 아무튼, 경제가 발전하면 시민의 기대 수준 역시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환경도 깨끗해진다는 사실을 그런대로 실감하게 된다.

지속 가능한 개천으로 변모하려면, 조선 영조 때 설치했던 준천사(濬川司)에 버금가는 ‘개천 관리국’도 신설하고 안전 관리에도 힘써야 할 게다. 가로수에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는 좁은 인도지만, 그나마 갑자기 끊어진 곳도 있지 않은가. 선진 서울을 표방한다면, 안전 대책 미비로 인한 부상자나 사망자에게는 철저한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아직 인공 생태계라 하기에도 미흡한 청계천이지만, 자연은 언젠가는 이곳의 황량한 콘크리트 틈새에도 생명을 키울 게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양분이 된다면 풍성한 개천으로 변모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한강 물에선 벌써 정치의 악취가 풍긴다.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온다. 영하의 날씨엔 물도 얼고 정치의 악취도 얼어붙을까. 쓰레기가 휘날리는 삭막한 건천 대신에 운치 있는 겨울 풍경이라도 기대하려면 함박눈이라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조영일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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