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미 다 얘기했잖아요.”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7일 고위 당정협의를 열어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 처리방향을 논의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5일 오전, 당정협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당 정책위 고위관계자가 퉁명스럽게 던진 말이다. 전날 오후 청와대가 ‘삼성생명ㆍ삼성카드 분리대응’ 방침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간 민감한 현안이 제기됐을 때 청와대의 ‘한마디’가 우리당의 정책방향을 좌우했던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대연정 논란이 그랬고, 서울대 논술고사 논란도 그랬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은 청와대에서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폐지론으로 정리됐다.
특히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입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 내용에 따라 지난해와 올해 180도 바뀌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도 “삼성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 계기였다.
여야가 금산법 개정안 논의에서 풀어야 할 첫 과제는 ‘5%룰’의 적용범위다. 1997년 법 제정 당시에 삼성생명이 이미 초과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을 인정하느냐 여부다. 여당 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당연히 여론수렴을 통해 입법으로 매듭지어야 할 책임은 국회에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또 다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인정하되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초과지분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상 해답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분리대응론을 반대한다고 했던 정세균 원내대표의 입장만 우스워졌다. 하지만 우리당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금산법 개정안의 찬반을 떠나 여당이 매번 중요한 현안에 대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씁쓸하다.
양정대 정치부 기자 torch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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