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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로버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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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로버트 김

입력
200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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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잊지 않던 고국 산천과 동포들, 이제 온 몸으로 품으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5일 자정(현지시각)이 넘은 시각 로버트 김(64ㆍ한국명 김채곤)은 미국 버지니아주 매나서스 자택에서 9년 8개월 만에 찾아온 온전한 자유의 첫 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는 본사 워싱턴특파원 및 서울 기자와의 통화에서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한국 땅을 두 발로 밟아보고 싶다.” “여건이 허락하면 영구 귀국하고 싶다.” “부모님 영전에 고개를 묻고 싶다.” “후원해 준 국민들을 직접 찾아 뵙고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의 생각 한 자락,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온통 꿈에 그리던 고국을 향해 있었다.

오로지 귀국의 기대에 부푼 초로의 신사는 10년 가까운 간난신고를 다 잊었노라고 했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서운함도 접었다. 그래서 그가 털어놓는 과거는 담담했다.

1996년 미 해군정보국(ONI) 문관으로 일하던 그는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무관 백동일(56ㆍ해군 예비역 대령)에게 군사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기밀누설)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간첩죄로 미 법원에서 9년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로버트 김이 미국 시민권자라 개입할 명분이 부족하다며 수수방관했다.

외로운 투쟁이 시작됐다. 현지의 편파적인 판결에 불복해 본인은 물론 동생 집까지 팔아 변호사를 선임했다. 여의치 않자 직접 미국 법전을 뒤져가며 재판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고 혼자 이감신청 뿐 아니라 감형신청과 형량 재심청구 등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두 차례 기각 뒤에 그는 지난해 초 8년 간 수감생활을 해온 펜실베이니아주 앨런우드교도소에서 집 부근인 버지니아주 윈체스터교도소로 이감됐다. 그 와중에 그의 부모는 아들을 이국 땅에 남겨둔 채 차례차례 세상을 떴다. 올 1월 부친 김상영씨의 1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외국 방문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마침내 승리했다. 그는 올 8월 1일 보호관찰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미국 법원은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해온 그에게 4일 보호관찰집행 정지 결정을 최종 통보했다. 7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포함해 영어(囹圄)의 몸이 된지 9년 8개월 만이다.

그는 거듭 동포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꿈만 같아요.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미 법원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한국에 있는 동포들의 성원 덕분입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여권 갱신 등 주변 일이 정리되는 대로 귀국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때 배신감을 느꼈다던 우리 정부에 대해선 “다 잊어버렸다”는 단 한마디로 갈음했다.

그의 자유를 염원하던 고국의 가족들과 후원인들도 감격했다. 고향인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막내 동생 형곤씨는 “너무 감개무량해 오히려 무덤덤하다. 형님을 직접 봐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고, 둘째인 김성곤(열린우리당) 의원도 “그간의 고생을 보상하는 의미에서라도 남은 생을 보람차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3년 7월 출범해 탄원과 모금활동을 벌여 새집을 마련해주고 매달 생활비를 보내준 ‘로버트 김 후원회(회장 이웅진)’와 ‘후견인 동아리’ 회원들은 이날 “로버트 김의 사례가 인도적 차원의 훌륭한 선례로 남길 바란다”며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낸 그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김에게 귀국 후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 조국의 신세대 젊은이에게 국가의 소중함,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선배로서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말은 단호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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