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나기가 거세게 내린 날이 있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지하철 역을 나오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다른 사람들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 중 군청색 양복에 깔끔한 넥타이를 맨 직장인 세 명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렸다. 한 사람이 “멀쩡하던 날씨가 왜 변덕을 부리는 거야”라고 투덜거리자 다른 사람이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고 답했다. 객담을 하는 이들도 웃었고 주변 사람들도 웃었다.
비록 농담이었지만 소나기가 노 대통령 때문이라니…다른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듯 했다. 경제불황이라는 거시적 테마를 놓고 노 대통령을 도마에 올리는 것은 그나마 그럴듯하다.
다소 과장하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도 노무현, 이를 잡으려고 부동산 관련세를 올려도 노무현, 중국산 김치에 납이 들어있어도 노무현, 자식들이 진학을 못해도 노무현을 탓하는 세태다. 한 여당 의원의 자조처럼 ‘노무현 때리기’는 전 국민의 스포츠가 돼있다.
대통령이 이 지경이니 다른 권위는 말할 것도 없다. 총리도, 장관도, 기업 CEO도, 대학총장도 다 별거 아닌 세상이다. 다혈질에 즉흥적인 이탈리아인들이 비가 오면 “왜 정부가 빨리 대책을 세워 비를 그치게 않느냐”고 화를 낸다는 얘기가 있듯이, 지금 우리 풍토가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잘난 세상에서는 리더십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찌감치 이 같은 위기를 겪었던 유럽은 제3의 길이나 연정, EU통합처럼 이념이나 국가의 경계를 좁히는 모호성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명쾌한 이념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의 이해대립을 풀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이해, 저런 입장에 적응하자는 차원에서 제3의 길, 통합이라는 화장을 한 모호성의 논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여야관계, 노사관계, 정부와 국민의 관계 등 어디를 봐도 막히지 않은 곳이 없다. 권위주의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면 일거에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구식 리더십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파열과 혼돈에 빠질 우려가 있다.
대권 주자들은 청계천 복원이나 한반도 냉전해체 시도, 대중적 인기, 안정적인 국정관리, 재야 민주화의 정통성 등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해결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거리는 권위 추락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리더십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 그들 중 누가 권력을 쥔다 해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리더십의 위기를 절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더 늦기 전에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얘기할 수 있다.
각 정파는 물론이고 언론 학계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 한계에 봉착한 한국의 리더십을 해부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거기에는 5년 단임제를 바꾸는 개헌이 있을 수도 있고, 행정구역이나 선거제도 개편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복선의 의혹을 받고있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처럼 정권 차원에서 발제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선거에 임박해서 논의를 해서도 안 된다. 정파적 이해대립으로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진지한 논의를 위해 정기국회가 끝나고 이런 담론을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이영성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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