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을 앞둔 청계천을 둘러보았다. 시작 지점인 청계광장 가까운 광통교 부근부터 천천히 걸었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하천에 깨끗한 물이 흐른다.
도심에서 하천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물길 주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나팔꽃 개망초 등과, 갈대 물억새 등 수변식물이 싱그럽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다리와 ‘정조반차도’ ‘빨래터’ ‘문화의 벽’ 같은 볼거리도 심심치 않다.
●바로 옆은 고밀도 개발
잿빛 고가도로와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였던 이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청계천 주변은 접근하기가 꺼려지는 장소였다. 늘 어두컴컴하고 음습했으며, 어수선했다.
밤이면 희미한 수은등만 켜져 있는 죽은 공간이었다.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의 상징물처럼 느껴지곤 했다. 1961년 콘크리트로 뒤덮인 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고도 남은 세월 동안 그 어둠을 거둬낼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를 제공한 연세대 노수홍 교수는 그런 점에서 일등 공신이다. 1991년 “청계천을 덮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하면 어떨까”라는 동료 교수 말에 퍼뜩 영감이 떠오른 그는 기술적인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여러 전문가와 원로문인 박경리씨를 규합, 청계천살리기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2000년 첫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듬해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가 연구회측에 공약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청계천 복원은 꿈에서 현실로 바뀌기 시작했다.
청계천 복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다시 물길을 연 청계천은 자연과 사람의 하나됨을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도록 요구한다. 하늘을 되찾고, 물길을 되살린 그런 철학과 정신을 삭막한 도시, 서울 전체에 융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당장 청계천 주변이 문제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청계천 주변 재개발사업은 고층, 고밀도를 지향하고 있다. 땅값과 임대료 상승 등 경제적 효과를 중시한 때문이다.
뚝방 옆으로 빼곡히 들어선 초고층 건물을 상상해보라. 되찾은 하늘은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에 다시 갇히고, 도심은 더욱 숨막히게 될 것이다. 유흥시설과 러브호텔 등 위해업소가 난립하는 등 난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초고층 아파트에 시민들은 질식할 것만 같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거라고는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건물뿐이다.
한줄기 바람이라도 쐬려고 베란다에 나갔다가 맞은편 아파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여 민망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관악산, 북한산 기슭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산을 가리는가 하면, 한강변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강이 잘 보이도록 키재기 경쟁을 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수십 년간 지켜 온 도심개발 제한을 풀어 세종로, 종로, 을지로 일대 등에 초고층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북한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 도심은 뿌연 안개 속에 칙칙한 색깔과 비슷비슷한 모양의 고층건물이 밀집한 멋없는 도시다. 아무런 특징 없는 획일화 된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한쪽에서는 잃어버린 물길과 환경과 자연을 되돌려준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개발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서울의 허파나 다름없는 남한산성 주변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고밀도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강북 등 구도심을 공공기관이 광역개발하면 층수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부동산대책이라고 태연히 내놓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면 고층아파트를 짓는 게 효과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들은 보다 쾌적한 공간에서 자연을 느끼며 살고 싶어한다.
●서울 모두에 환경이 흐르게
세계 도시 중에서 서울처럼 도시 안에 산과 개천이 많은 곳은 없다. 그만큼 녹색이 풍부하다. 산과 구릉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건물을 지으면 그 자체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고밀도 개발은 천혜의 경관을 죽이는 짓이다. 청계천을 수십 개 만드는 것보다 과도한 개발을 자제하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이다. 다시 태어난 청계천은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버리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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