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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은 게 죄냐" 노인들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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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은 게 죄냐" 노인들의 항변

입력
200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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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정년제가 합법적인 것임을 전제로 60세 정년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년제의 끝은 무엇일까요? 빈곤! 바로 절대적 빈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도 없이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니요. 이건 마치 뜸도 들이기 전에 밥솥을 열어 김을 다 빼는 일 아닙니까?”

29일 오후 2시 모의재판이 열린 서울 송파구 한국지역사회교육회관 새이웃 소극장에서는 실제 재판처럼 열띤 공방이 오갔다.

이날 재판의 주제는 ‘나이 먹는 게 죄냐!’ 장ㆍ노년층을 위한 사회제도 개선 운동을 하고 있는 대한은퇴자협회(회장 주명룡)가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재판은 대학 연합 동아리 극예술연구회 소속 연극영화과 학생 10여 명이 역할을 맡아 진행했다.

피고로 설정된 정부와 기업은 활용 가능한 노인 인력에 대해 조기 퇴직 종용, 연령 차별, 정년 단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의 날카로운 추궁이 시작됐다.

“늙은 게 죄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응답자가 95%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정부는 코 앞으로 다가온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이 있습니까?” 기업에도 질책이 쏟아졌다. “힘 없는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가에서도 발 쭉 뻗고 누워 있는 것 아닙니다. 지금 할 일이 태산인데 국가에서 어련히 알아서 안 할까 봐 걱정입니까?”(정부측 대변인 노여론씨)

“사실 검증된 고급 인력을 쓰는 게 낫지요. 그런데 정부에서 정년을 그렇게 단축해 놓았으니….”(기업측 대변인 기업가씨)

“아니 그럼 노인들이 가난한 게 정부 탓입니까?”(노여론씨) 재판이 엉뚱하게 정부와 기업 간의 싸움으로 흐르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피고측 변호인이 문제를 제기한 나정정씨에게 “조금이나마 쉬고 싶은 마음에 조기 퇴직에 선뜻 응한 것이 아니냐. 안되면 조상 탓인 자세가 문제”라고 질책하자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야유가 터져 나왔다.

재판의 성격을 대변하듯 방청객 50여 명 대부분은 노인들이었다.

이날 재판부는 노인들에게 조기 퇴직을 종용하여 경제권을 빼앗은 기업에게 3만6,500시간의 사회통합 운동 명령을, 여론에 휩쓸린 정부에게는 관련 사안을 법제화할 것을 권고했다.

방청객 방흥복(55)씨는 “얼마 전 헤드헌팅 회사를 퇴직하고 걱정이 많았는데 재판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다”며 “하루빨리 노인들을 위한 안정적인 생활 여건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상균(70)씨는 “배역도 모두 은퇴자로 구성했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행사를 준비한 주명룡(60) 회장은 “고령화 사회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정작 국가와 사회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노인 인력 활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행사를 기획했다”며 “은퇴자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제화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대정부 설득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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