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 관한 한, 우리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셈이다. 그렇게 큰 비용과 희생을 치렀는데도 아직도 곳곳에서 갈등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실 인간은 ‘갈등인(homo conflictus)’이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이 사는 곳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즉 갈등 제로의 사회란 상상 속에나 있을 뿐이다.
갈등의 효율적 관리는 이처럼 갈등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갈등은 그 자체가 해악이라기보다는 시급한 해결을 요하는 문제나 모순의 표출일 수도 있다. 갈등이 그 해결 과정을 통해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에서이다.
그러나 갈등 관리를 위한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더 큰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거래 비용을 줄이는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새만금, 안면도, 굴업도, 부안, 천성산, 한탄강…. 길고 긴 공공 갈등의 목록은 우리 사회가 지급한 천문학적 거래 비용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렇기에 현명한 최고경영자(CEO)라면 의당 갈등 관리를 체계화, 조직화함으로써 거래 비용을 줄이는 데 주력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 역시 미리미리 갈등 관리의 인프라를 구축하여 적기에 갈등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회적 비용 축소에 도움
지금 국회에 상정되어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공공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안’은 바로 그런 뜻에서 우리나라의 갈등 관리 역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사회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대한 책무, 갈등 영향 분석 제도화, 시나리오 워크숍, 시민 배심제, 공론 조사 등 갈등 예방을 위한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의 활용, 갈등 관리 지원센터를 통한 지식정보자원 축적 및 기술지원, 대형 공공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갈등조정회의 설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사실 갈등에 관한 경험과 교훈들은 축적되지 않고 쉽게 사장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고 더욱 악화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갈등 관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MIT대학의 서스카인드 교수는 갈등 해결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이 쉽게 소실되고 확산ㆍ계승이 어려우며 실제로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편익을 얻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갈등 관리에 관한 법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갈등 처리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들을 지속적으로 확산ㆍ공유하기 위해서는 갈등 관리를 위한 법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일각에서는 법안이 주로 임의 규정으로 돼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거나 굳이 법제화가 필요한지, 반대로 시민 참여를 너무 보장하여 오히려 갈등을 조장ㆍ확대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주저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 법ㆍ제도들이 집단 갈등의 당사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고, 적절한 해법이 없는 공공 갈등에 대한 포괄적인 갈등 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갈등 관리 관련 교훈과 기술, 지식정보 자원을 집약하여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기구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 조정이나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의 경우 강행 규정으로 고정하는 것보다는 임의 규정으로 도입하되 최대한 사정에 맞게 융통성 있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정 법안 처리 국회의 몫
그 동안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사업 타당성도 문제였지만, 정부의 잘못된 접근 방법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가 더 많았다는 이구동성의 지적을 감안할 때, 선진국에서 성공사례를 쌓아온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의 활용을 시민사회 과보호로 곡해할 이유는 없다. 공공 갈등 관리법 입법에 대한 시대적 요청에 국회가 진취적으로 응해야 할 시점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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