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싸고 ‘삼성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금융기관 계열분리청구제 ▦대주주 자격유지제 등을 도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가 출범 전 약속했던 재벌개혁 조치들이 공무원들의 정책 검토 과정에서 퇴색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29일 금융기관 계열분리청구제와 대주주 자격유지제 등에 대해 최근 1년 동안 외부 연구용역과 내부 토론을 벌인 결과 도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도입에 어려움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지난해 1월 발표됐던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로드맵’ 중에서 중장기 검토과제로 남겨둔 계열분리청구제와 대주주 자격유지제 부분을 배제한 7개 금융관련법 개정안을 마련, 법제처와 협의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정 법률안들은 11월 국회 통과와 내년 상반기 중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열분리청구제란 재벌계열 금융회사가 고객자산을 부실 계열사에 지원하는 등 부당내부거래를 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가 계열분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며, 대주주자격심사제는 금융회사의 대주주가 금융회사 설립ㆍ인수 때 갖췄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심사해서,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지분처분을 명령하는 제도이다.
2003년 초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미 금융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재벌의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두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재경부는 원래부터 이 제도의 도입에 부정적이었다”며 “재벌이 보험, 증권 등 제2금융권 계열사를 나쁜 의도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핵심 내용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재경부 방침대로 개정 법률안이 내년 상반기 시행될 경우 산업자본이 대주주인 제2금융권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된다. 재경부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회사와 증권회사 저축은행 등을 소유한 산업자본 대주주가 고객자금을 활용해 계열사를 과다하게 지원할 경우 최고 5년의 징역이나 2억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또 보험 증권 등 제2금융권의 대주주로 있는 기업이 부실 징후를 보이면, 감독 당국이 해당 회사와 대주주간 거래를 전면 금지시킬 수 있게 되며, 금융회사를 설립ㆍ인수할 수 있는 산업자본의 최소 부채비율이 현행 200%에서 150% 가량으로 낮아져 빚이 많은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힘들어진다.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도 설립 때와 똑같은 자격심사를 하기로 했다. 이는 2003년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할 때 한화에 대한 별도의 자격심사가 없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도 자산 2조원 이상 재벌의 금융회사에만 적용하고 있는 동일 계열사 보유지분의 의결권 행사 제한도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대주주가 산업자본인 전 금융회사로 확대된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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