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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교수의 가정주치의] (10) 무조건 혈액순환장애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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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권 교수의 가정주치의] (10) 무조건 혈액순환장애 탓?

입력
200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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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순환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손발이 차고 저리다, 뒷목이 뻐근하다, 몸 한 쪽이 아프고 시리다 등의 여러 가지 모호한 증세가 있으면 흔히 혈액순환이 잘 안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혈액순환은 호흡과 함께 생명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혈액순환 문제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혈액순환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혈관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대개 혈액순환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 혈관이 막히는 병은 그 증세가 다릅니다.

중풍과 같은 뇌혈관 질환은 사지의 한 부분을 지배하는 뇌의 일부분에 혈관이 막혀서 생기게 됩니다. 대개 몸 한쪽의 감각이상과 운동마비 증세를 동반합니다. 드물게 순전히 감각만 저하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손에 힘이 없어 물건을 놓친다든지 말이 어눌해지거나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장애가 갑자기 발생합니다.

이런 증세가 24~48시간 내 없어지기도 하고 아니면 점점 더 진행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정도로 손이 저리다가 어떨 때는 괜찮기도 하는 경우에는 뇌혈관질환일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목의 척수신경이 빠져 나오는 부위에서 압박되는 목 디스크나 손목 주위에서 말초신경이 압박되는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손발이 찬 경우도 혈액 순환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율신경의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찬물에 손을 담그거나 추위에 노출되었을 때 손이 시리고 하얗게 변했다가 따듯하게 하면 다시 원상 회복되는 경우에는 레이노병이라는 혈관질환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다. 팔다리 어는 한 쪽만 계속해서 아프고 시려서 중풍을 걱정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도 뇌혈관이 막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무 이상 소견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손발이 저리고 차다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분을 자세히 보면 스트레스가 많거나 별 이유 없이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평소 불안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발 저림 역시 불안증의 흔한 증세인 것이죠.

이와 같이 굳이 혈관질환이 없는데도 그렇게 걱정하는 것은 혈액의 순환이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겠죠. 어찌 보면 마치 혈액순환이 건강한지 아닌지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듯 합니다. 중풍과 심장병 같은 치명적인 혈관질환 발생이 부쩍 많아진 사실도 많은 증상을 혈액 순환의 문제로 돌리게 된 이유일 것입니다.

진짜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키는 병은 혈관질환입니다. 혈관의 내벽에 죽상경화증이 생겨 혈액의 흐름이 방해받거나 더 진행돼 막히는 경색증, 또는 부스러기가 떨어져서 말초동맥을 막는 색전증, 또는 혈관이 수축하여 혈액순환에 일시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등입니다.

뇌혈관, 심장 혹은 신장으로 가는 혈관이든 말초동맥이든 위와 같은 원인으로 혈액이 공급되지 못할 때 그 혈관이 지배하는 장기가 손상을 입습니다. 일시적으로 막혔다고 풀리면 회복이 되겠지만, 영구히 막혀 다른 혈관 길로도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조직손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혈액순환을 잘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혈관을 튼튼히 해서 동맥경화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그 중에 금연이 가장 중요하겠고,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높지 않은지 1~2년에 한번씩 검사를 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적절한 운동은 혈관 상태를 좋게 합니다.

심혈관 위험요소가 있는 분은 소량의 아스피린도 금기 조건이 없다면 도움이 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이른바 혈액순환제라고 하는 약제는 대부분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약물은 아니고, 보조제 정도로 쓸 수 있는 약이니 너무 과신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손발이 저리고 시리다고 혈액순환제를 사드시거나 무조건 혈액순환 검사를 받으시려고 하지 마시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서 쓸데없는 걱정을 덜기 바랍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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