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설화를 겪었지만 그런 면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인 그린스펀이 한 수 위다. 워낙 설화를 많이 겪다 보니 언론마저 둔감해져 어지간해서는 “그린스펀 머리에 또 외계인이 들어왔다”고 가십으로 넘길 정도다.
작년 2월 그린스펀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가계가 안고 있는 고정 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을 변동 금리부 대출로 전환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당시 미국 금리는 1%대로 30년 이래 최저 상태였다.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해 금리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예측하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상승시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변동 금리부 대출로 전환하라고 권고했으니 언론에서는 “역대 중앙은행이 제시한 가장 이상한 권고”라고 표현하다가 나중에는 “그린스펀이니까”하고 넘겨 버렸다.
●내달 콜금리 결정 딜레마
그의 발언은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중앙은행 수장의 고충에서 나온 실언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후반 경기 침체 후 미국의 경기 회복은 부진한 편이었고 그나마 미미한 성장도 유례없이 높은 소비 증가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러한 소비 증가는 계속된 금리 인하로 인해 가계가 금리 재조정을 통해 이자 부담을 줄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작년 2월 금리는 바닥을 쳤고 더 이상 이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금리가 더욱 저렴한 변동금리 부 대출로 전환시켜 금리 인상 전 마지막으로 성장률을 쥐어 짜내겠다는 것이 그의 의중이었던 것이다. 금리를 인상하자니 경기 회복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고 저금리를 유지하자니 재정 적자 및 부동산 과열이 앞을 가로막는 상황에서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보니 이런 실언이 나온 것이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린스펀이 고민했던 과제가 박승 총재 앞에 놓여있다. 내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지, 현 수준인 3.25%를 유지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저점을 통과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경기 회복, 그리고 500조에 이르는 가계 대출의 부실화 우려 역시 금리 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반면 아직은 미국과의 금리차가 작지만 현 상태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1% 이상으로 확대되어 자본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고유가로 인한 물가 상승 요인, 그리고 무엇보다 430조에 이르는 부동자금 회수는 금리 인상 압박 요인이다.
이렇게 현 수준 유지와 인상 요인이 공존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금리 인상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판단된다. 2001년 시작한 저금리 기조가 너무 오래 지속하였다.
작금의 저금리는 기업의 설비 투자를 증가시키거나 가계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순기능을 상실하였다. 실물 경기의 금리 민감도가 떨어져, 불어난 유동성은 단지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을 횡행하며 거품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유동성은 가계 부채의 비대화를 가속시키고 있기 때문에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경제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고 경제에 거품만 불어 넣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상태다. 따라서 금리 정책이 실물 경제에 6개월 선행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지금은 금리를 인상해야 할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은 금리 인상쪽 무게 실어
물론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 8ㆍ31 부동산 대책으로 늘어난 보유세, 양도세 등 부동산세 부담에 소득세 인상까지 겹쳐 경기 회복이 부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금리 유지 쪽으로 무게 추를 옮겨 놓는 바람에 결정이 더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 대세는 중립적 금리 수준으로 한 걸음 내디딜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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