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렌지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혁명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집권했던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즘 형편이 말이 아니다. 1월 취임 직후 50%에 근접했던 지지도가 7개월 만에 20% 아래로 급락했다. 정부 신뢰도도 혁명으로 쓰러뜨렸던 쿠츠마 전 대통령 정권 말기 수준에 근접한다. 독재정권에 항의해 영하의 눈 내리는 거리에 텐트를 치고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의 열기와 연대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서 찾아 볼 수 없다.
▦ 혁명 성공 후 1년도 채 안 돼 상황이 돌변한 것은 새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 탓이다. 민주화 혁명 당시 대통령후보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유셴코와 티모셴코는 대선에 승리한 뒤 대통령과 총리로서 권력을 공유하는 듯 했다. 부부보다 더 다정해 보였던 그들은 그러나 신정부 출범 7개월 만에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섰다.
유셴코 대통령이 권력 다툼 끝에 티모셴코 총리 내각을 해산해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은 개혁 추진을 위해 힘을 합하는 대신 무책임한 대중 영합정책으로 경쟁을 벌여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부정부패 만연과 인플레 등 경제난 악화 속에 오렌지 혁명의 이념은 급격히 퇴색하고 있다.
▦ 오렌지 혁명보다 1년 먼저 민주화 혁명에 성공했던 그루지야의 장미혁명도 빛이 바랬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 축출 후 실시된 대선에서 96%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그루지야판 르윈스키 스캔들’로 불리는 여비서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민주화 이미지에 먹칠을 하면서부터다.
독립국가 연합 중 3번째로 민중 봉기가 성공한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은 남부와 북부의 지역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백향목 혁명이라고 치켜 세웠던 레바논의 시민혁명도 미완성이다. 25일에는 유명 여성앵커가 친 시리아계의 폭탄테러로 중상을 입었다.
▦ ‘혁명들’이 하나같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민주화 도정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화 혁명이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삭 잡아 뽑듯 억지로는 안된다는 점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을 대외정책의 주요 명분으로 삼고 있고 중동아 중앙아시아의 잇단 민주화 혁명에 고무됐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혁명들의 추락에 누구보다도 상심이 클 것 같다. 이래저래 부시 대통령에게는 술 권하는 힘든 세월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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