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빌 클린턴 정부 시절(1993~96년)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을 총괄했던 윈스턴 로드 전 미 국무부 동아ㆍ태 차관보는 “베이징 6자 회담 공동성명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선 제네바 합의 때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유사한 다자간 협력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차 북한 핵 위기 이후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직ㆍ간접으로 관여했던 로드 전 차관보는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북미가 6자 회담 틀 속에서 직접 대화한 점을 평가하면서도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 등 이유로 북한과의 협상다운 협상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진정한 핵 폐기 의도를 확인, 최악의 경우 대북 제재를 위해서도 6자 회담의 틀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동성명과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비교해 달라.
“이번 성명은 협상의 시작 단계에서 합의된 원칙의 모음이지만 제네바 합의는 협상의 최종 결과물이었다. 이 성명이 북미 두 나라만이 아닌 6개국 모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점은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차이다. 한국의 참여가 보장됐고 앞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을 때 참여국 모두가 이를 보증할 수 있게 됐다. 회담 참여국은 함께 북한에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고 제재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의 핵 포기에 맞춰 대가를 지불한다는 기본적 합의는 유사하다.”
-제네바 합의에 따른 대북 경수로 지원은 무산됐다. 이번 성명의 경수로 관련 합의를 평가하면.
“제네바 합의 이행 과정에서 북한의 속임수가 드러남으로써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갖는 것을 용인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한다는 원칙적 합의는 수용할만하다. 이 합의는 평양에 공동성명에 서명할 수 있도록 명분을 주었다. 이행 순서의 문제가 향후의 관건인데 북한의 핵 폐기가 선행돼야 하고 경수로가 지어진 후에도 집중적 사찰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6자 회담 참여국 사이에 경수로 제공 비용 분담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KEDO와 같은 접근방식이 고안돼 여기에 6자 회담 당사국 뿐 아니라 유럽, 호주 등 모든 핵심 국가들이 참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경수로 비용을 크게 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부담은 한국과 일본의 몫으로 다시 귀착될 것이다. 신포 경수로의 경우 땅 굴착, 기본 골조 공사를 마친 상태여서 어떤 부분은 앞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제네바 합의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어떤 이행의 시간표가 필요한가. 11월 5차 6자 회담을 전망하면.
“다음 회담에선 원칙을 구체화할 실무협상 그룹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북한이 호전적으로 나올 수 있지만 누구도 완전 결렬을 원치 않기 때문에 협상은 계속될 것이다. 기본적 문제는 북한이 진정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지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6자 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의도를 시험해 보는 게 옳은 일이다. 북한이 비난 받아 마땅한 것으로 판명되면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때도 중국과 한국도 여기에 동참할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제2기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이 크게 변하고 있는데.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거부했지만 2기 정부 들어 달라지고 있다. 6자 회담 내에서 북미가 직접 대화를 갖는 등 다각적인 대화 틀을 마련한 것은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이 틀은 인센티브 제공 뿐아니라 북한 고립용으로도 유용하다. 부시 정부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진척 속도 때문에 정책의 변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중국, 한국, 러시아가 대북 압력을 원치 않았고 군사적 옵션은 너무 위험하다는 점도 미국의 선택을 제약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정책 등 외부 문제에 허리케인 여파 등 국내 문제까지 겹쳐 여력이 없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1기 임기 때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게 못하게 한 정책을 지금 수행하고 있다.”
-달라진 한미 관계가 공동 성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슬프게도 한국과 미국은 서로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미국의 희생을 기억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정권인 북한에 대해 완전히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다. 미국도 실수를 했지만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이 주로 문제가 된다. 호혜성 없는 막대한 지원, 탈북자 등 인권문제에 대한 외면 이 문제다. 한미는 여전히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으나 북한에 대한 태도가 서로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동성명에 언급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를 다룰 포럼은 어떤 방식이 돼야 한다고 보는가.
“유엔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체제는 당연히 남북한과 미국, 중국과 관련돼 있다. 다른 일부 국가도 옵서버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평화체제 전환의 조건으로는 핵 문제 이외에 미사일이나 병?배치 같은 군사적 문제의 합의가 포함돼야 할 것이다. 국제적 보장장치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6자 회담 과정에서의 일본, 중국, 러시아 역할을 평가하면.
“일본이 핵 문제를 최우선하면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시각을 유지했다. 중국과 한국, 러시아는 핵무기 보다는 역내 불안정을 더 두려워했다. 이 세 나라가 북한에 대한 압력을 거부했기 때문에 진정한 협상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 기화로 북한은 협상을 질질 끌 수도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 윈스턴 로드는 누구
윈스턴 로드 전 차관보는 1차 핵 위기가 발생했던 1993년부터 96년 말까지 4년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전담했다.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정치군사담당차관보와 함께 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었고, 이후 대북 경수로 제공 협상에서 한미간 정책조율을 주도했다.
1985년부터 4년간 주중 미 대사를 역임한 중국 통이기도 하다. 현재는 뉴욕 소재 국제구난위원회(IRC) 공동의장으로 있으면서 정책 조언, 강연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뉴욕ㆍ68세 ▦예일대 졸업 ▦국무부 입부(1961) ▦외교협회 회장(1977~1985) ▦주중 대사 ▦동아태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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