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나라살림을 짜면서 정부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을 펴고 미래성장동력 확충, 양극화 해소에 힘쓰는 등 재정의 효율적 사용과 국가의 기본기능 수행에 역점을 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 악화로 국민들이 부담할 세금이 예상보다 줄어드는 데도, 세금보다 15조원이 많은 지출을 계획하고 그 부족분을 9조원의 적자국채와 6조원의 정부 보유자산 매각으로 충당키로 한 것을 감안하면 확장적 재정편성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퇴직 공무원 및 군인들의 연금 지급을 위해 1조8,000억원의 혈세를 지원키로 한 것은 정부 잘못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참여정부 재정정책은 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빈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많은 재원을 투입하지만,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경제성장에도 소홀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 분야에 올해보다 15.0% 증가한 9조원이 투입되며 복지부문엔 10.8% 증가한 54조7,000억원이 들어간다. 기초생활보장 부문만 보면 22.2% 증가한 5조4,000억원에 달한다.
기획처는 특히 각 분야에서 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해소에 동시 기여할 수 있는 사업에 예산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사회복지분야에서 일자리 지원(2,909억원), 육아지원(9,361억원), 고용서비스 선진화(3,739억원) 등이 대표적이며, 교육분야에선 지방대학 혁신역량강화(2,700억원), 농어촌 교육여건 개선(432억원), 학자금 지원(1,490억원) 등에 예산이 집중됐다. 또 국방개혁 지원과 사병 복무환경 개선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보고 국방비 투자도 9.8%나 확대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세수 여건이 악화하는데도 정부 지출이 7% 가까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확장적이고 방만한 재정운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내년 국가채무 비율이 31.9%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점도 정부의 안일한 재정운용을 상징하는 수치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과감한 세출조정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정부의 정책 실패를 국민의 혈세로 떠 앉는 지출구조를 내년에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심사인 셈이다.
특히 정부 정책의 잘못으로 불입액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을 지급하는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내년에도 각각 9,261억원과 7,829억원 등 총 1조7,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것은 연금개혁을 주장하는 정부 정책을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또 DJ정권의 ‘작은 정부’보다는 ‘일하는 정부’를 주장하면서 공무원 정원을 대폭 늘린 결과, 내년 공무원 인건비가 올해(19조원)보다 1조5,000억원(8%)이나 늘어난 20조5,000억원에 달하고, 개별 공무원의 임금도 평균 3%나 늘려주기로 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변양균 기획처 장관은 “내년 경상성장률이 7.5% 수준으로 전망되지만,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은 6.5%에 머물고, 통합재정수지 기준으로 2조2,000억원의 흑자가 나는 것을 감안하면 경기에 비해 재정이 돈을 많이 쓰는 팽창예산으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내년도 이색사업/ 출산장려 대책 유난히 많아
내년 예산안에는 불임 시술 및 산전ㆍ후 휴가급여 지원 등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이 유난히 많다. 사병 봉급 현실화, 혈액센터 통폐합 등 연중 불거졌던 문제들을 개선키 위한 대책도 눈에 띈다. 이색 사업들을 살펴본다.
◆북한 영ㆍ유아 지원(25억원)= 북한의 5세 이하 아동 230만명과 산모ㆍ수유부 98만명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개선키 위한 5개년 사업이 시작된다. 영양식 백신 의약품 등을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통해 지원할 계획이다.
◆사병 봉급 현실화(3,980억원)= 사병 봉급(상병 기준)이 월 6만5,000원(2005년 4만6,600원)으로 올라간다. 병영생활을 하는데 월 평균 8만원이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에 따른 것으로, 2007년에는 이 수준까지 사병 봉급을 추가 인상할 예정이다.
◆불임 시술비용 지원(213억원)=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불임 부부 1만5,000쌍에게 불임시술 비용(평균 300만원)의 절반 정도를 2회까지 지원한다. 대상은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60% 이하 가구 중 불임 진단을 받은 44세 이하 여성이다.
◆문화재 종합병원 설치(20억원)=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한 문화재 병원이 만들어진다. 개인이 갖고 있는 문화재도 복원 대상이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작업을 수행한다.
◆혈액검사센터 통폐합(232억원)= 전국 7개의 혈액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혈액검사를 3개 검사센터로 통폐합해 집중시킴으로써 혈액의 안전성을 강화한다. 혈액검사 장비, 시설공사비 등이 투입되며 토지구입분은 적십자사가 자체 확보키로 했다.
◆재난발생 문자정보 전송 시스템(8억8,000만원)= 긴급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해당 지역에 있는 휴대폰 소지자에게 문자정보를 전송,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 소방방재청 주관으로 만들어진다.
◆자동차 선팅 단속기기 보급(5억1,800만원)= 내년부터 선팅 기준이 ‘암도 60%’ 식으로 까다로워진다. 이에 따라 자동차 유리창 선팅의 어두운 정도를 쉽게 파악ㆍ단속키 위한 장비가 경찰에 보급된다.
◆희귀ㆍ난치병 환자 쉼터 운영(10억원)= 혈우병 등 희귀ㆍ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해 숙소 및 상담서비스가 제공된다. 운영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 조달키로 했다.
◆산전ㆍ후 휴가급여 90일분 지원(1,107억5,600만원)= 출산에 따른 여성 근로자의 이직을 방지하기 위해 산전ㆍ후 휴가급여 90일분 전액(최고 135만원)을 지원한다. 유산이나 사산으로 인한 휴가도 지원한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 내년 세금해방일 3월 31일 올해보다 이틀 늦어져
올해 4조6,000억원에 달하는 세수부족 사태로 국민의 조세부담률이 연초 예상보다 0.6%포인트 감소한 19.0%로 하락할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경기회복과 정부의 세수확보 노력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19.7%로 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부과한 세금을 내기 위해 국민들이 1년 중 얼마나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세금 해방일(GDP 대비)도 올해 3월11일에서 내년에는 3월13일로 이틀이나 늘어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연초 19.6%로 예상됐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부족으로 올해에는 19.0%에 머물지만 내년에는 19.7%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세금으로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해야 할 기간이 올해 70일에서 내년에는 72일로 이틀 늘어나게 됐다. 요컨대 2006년이 시작되자 마자 국민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고 가정할 경우, 올해 세금 해방일은 3월11일이었으나 내년엔 3월13일이 되는 셈이다.
내년에도 늘어나는 세금부담은 봉급생활자에게 집중될 전망이다. 2006년 징수 전망인 국세(136조92억원)가 이달 초 수정된 전망치(126조6,500억원)보다 7.3% 늘어나는 반면, 샐러리맨이 내는 근로소득세(12조321억원)는 12%나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자소득세는 올해 2조4,852억원에서 2조7,713억원으로 11.5%, 8ㆍ31대책으로 부동산 매물이 크게 늘어나면서 양도소득세는 3조9,114억원에서 4조7,29억원으로 21.5%가 각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교통세는 14.1% 늘어난 11조8,359억원, 종합부동산세는 올해(7,000억원)보다 45.7% 급증한 1조200억원으로 추산됐다. 올해 당초 목표보다 크게 줄어든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도 각각 14.2%와 1.8% 가량 늘어나는 반면, 세율 인하로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는 9.4%(2조7,885원) 줄어든 26조8,831억원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한편, 정부는 올해 세수가 환율 하락과 민간소비 침체로 당초 예상보다 4조6,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세목별로는 관세에서 1조4,534억원, 특별소비세에서 6,722억원이 덜 걷힐 전망이다.
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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