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두 개의 주부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인기시리즈 ‘위기의 주부들’이고, 다른 하나는 ‘장밋빛 인생’이다. 그러나, 두 작품은 인기 있는 주부 이야기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다.
‘위기의’ 주부들은 계속 죄를 짓는다. 아이를 맡기고 요가를 배우기 위한 사소한 거짓말부터 미성년자와의 외도, 자식의 뺑소니를 덮기 위한 증거 은폐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죄와 속죄 사이에서 고뇌한다.
반면 ‘장밋빛 인생’에서 속죄해야 할 사람은 맹순이(최진실)가 아니라 외도를 하고도 순이를 ‘피 토할 때까지’ 때리는 남편 반성문(손현주)과, 그런 성문의 편을 들며 순이를 괴롭히는 시댁 식구들이다.
‘위기의 주부들’은 죄를 숨기려다 또 다른 죄를 지으면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죄의 연결고리에 휘말리지만, ‘장밋빛 인생’에서는 오직 순이만 박해 받고, 그가 용서하면 다시 모두 평온하게 산다.
그래서 ‘위기의 주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서로 숨기고, 캐내는 비밀들로 인해 점점 더 복잡한 이야기와 서스펜스가 쉴새 없이 이어지는 반면, ‘장밋빛 인생’은 모든 고통을 떠안은 순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드라마가 달라진다.
순이만 기뻐하면 이혼을 하기 위해 순이를 속이는 성문의 태도도 희극적으로 묘사되고, 사실을 안 순이가 울기 시작하면 비극이 되어 쉴새 없이 극단적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데 주력한다. 이는 캐릭터를 계속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며 사람들을 울리는 신파극과 비슷하다.
그래서 ‘장밋빛 인생’은 작품의 완성도를 즐기기보다는 순이에 이입된 주부 시청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묵묵히 남편과 자식을 위하여 살면서 쌓인 불만들이 순이를 통해 폭발하고, 또 위안을 얻는다.
‘장밋빛 인생’은 불륜과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이 마음잡고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자 곧바로 활짝 웃는 여자라는 비정상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가치를 가지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순이는 개인의 욕망을 참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순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는 자신이 처한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나 탈출이 아니라 그런 여성의 속을 가족이 알아주느냐 모르느냐 뿐이다.
알아주면 웃고, 몰라주면 운다. ‘위기의 주부들’이 그것이 죄라 할지라도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사이, ‘장밋빛 인생’의 순이는 가족의 부속물로, 절대적인 희생을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 당하며 산다.
가족에게 참았던 감정을 내쏟는 순이의 모습은 속 시원할 수도 있지만, 결국 ‘장밋빛 인생’은 여성의 삶의 기준을 오직 ‘주부’의 그것에 한정시킨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미 순이 또래의 주부들도 ‘장밋빛 인생’과 ‘위기의 주부들’을 함께 즐기는 이 시대에 말이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