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둘러싼 채권단과 삼성그룹간 공방이 결국으로 법정으로 넘어가게 됐다.
서울보증보험 우리은행 등 15개 삼성차 채권금융기관들은 26일 회의를 갖고 삼성 이건희 회장과 31개 계열사를 상대로 채권회수소송을 제기키로 최종 결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1999년 이뤄진 합의각서에 대해 삼성측에 이행을 요구해왔으나 삼성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결국 소송을 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99년 합의각서란 당시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성차의 2조4,500억원의 부채처리를 위해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주식 350만주(주당 평가액 70만원)를 채권단에게 제공하고 ▦이 주식을 매각해 2조4,500억원에 미달하면 이 회장이 삼성생명주식 50만주를 더 내놓으며 ▦그래도 부족하면 31개 삼성계열사가 나머지를 보전해주기로 한 약정이다.
채권단측은 삼성이 부채를 제 때 상환하지 못하면 연 19%의 이자를 물기로 약속한 만큼, 이번 소송규모는 최대 4조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법정으로까지 가게 된 채권단과 삼성의 공방은 한 마디로 삼성생명 주식이 안 팔렸기 때문이다. 당초 삼성이 350만주를 내놓을 때는 ‘삼성생명 상장을 통한 현금화’가 전제되어 있었지만, 계약자배당 등 복잡한 문제가 걸리면서 상장 자체가 무산됐다.
채권단은 삼성생명 주식을 살 만한 국내외 투자자를 물색했고 뉴브리지캐피탈 등 몇몇 해외사모펀드(PEF)들의 ‘입질’이 계속됐지만, 매각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채권단으로선 삼성생명 지분매각시효가 연말로 임박함에 따라 결국 소송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사실 채권단이나 삼성이나 할 말은 있다. 채권단은 ‘이유여하를 떠나 빚은 받아야겠다’는 입장이고, 삼성측은 ‘맡긴 주식이 안 팔리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항변하고 있다.
소송의 핵심은 99년 ‘합의각서’의 효력에 대한 판단이며, 판결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올 가능성도 있다. 삼성측은 단지 채무금액조정이나 연체이자경감 정도가 아닌, 차제에 99년 ‘합의’자체를 무효화하는 쪽으로 소송방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합의가 ‘자발적’이기보다는 환란이후 강제구조조정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사실 주식회사는 주주가 ‘유한책임’을 지는 회사형태다. 당시 ‘주식회사 삼성자동차’의 처리는 주주(이건희 회장)에게 출자액를 넘어 손실액 전부를 떠안도록 ‘무한책임’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주식회사 제도와 근본적으로 상치되는 측면이 있다.
이 같은 논리가 법정에서 먹혀 들어간다면 삼성측은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엄연히 합의각서가 존재하는데다 국내 최대기업으로서 ‘책임회피’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어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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