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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 마라토너의 '아름다운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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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 마라토너의 '아름다운 질주'

입력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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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했던 탓일까? 팔에 힘이 빠진다.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안간힘을 써보지만 선두는 점점 멀어져 간다. 언제나 외로웠던 레이스. 멀리 독일에서도 예외 없이 고독한 사투가 이어진다.

30㎞ 지점에 이르자 숨마저 거칠다. 우람한 팔뚝은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무리의 선수들이 쏜살같이 옆을 스쳐 앞서간다.

문득 길가로 고개를 돌렸다. “파이팅!”이라고 쓴 선명한 한글이 눈에 들어온다. 재작년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늘 외치던 응원이었다. 악착같이 내달렸다.

‘보인다!’ 한 손, 한 손 다가가 웅장한 브란덴부르크 문에 닿았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지만 하늘로 쭉 뻗은 두 팔이 자랑스럽다.

문정훈(26)씨는 두 팔로 달리는 마라토너다. 그는 서울북부장애인복지관 휠체어 마라톤팀 소속으로 25일 열린 제32회 베를린 마라톤 휠체어부에 동료 박정호(33) 선수와 함께 참가해 42.195㎞ 풀코스를 완주했다.

공식 기록은 1시간40분18초. 참가선수 68명 중 10위. 하지만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다시 한번 한계를 극복한 자신이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다.

수화기 너머 그는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는 경기 직후 전화 인터뷰에서 “예상보다 훨씬 멋진 대회였다. 멋지게 완주해 가슴 뿌듯하다”며 웃었다. 하지만 흥분을 누르고 대회를 되돌아보는 그는 역시 프로다.

“휠체어 마라톤은 초반 자리 싸움과 체력이 고갈되는 30㎞ 지점에서 승패가 결정이 나요. 이번 대회는 특히 커브길이 많았는데 도로 적응이 안된 탓에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어요.”

문씨의 손과 발이 돼준 자원봉사자 홍영기(33)씨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오히려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고작 대회 이틀을 앞두고 현지에 도착했다. 사전 코스적응 훈련은 호사였다. 그에겐 참가 자체가 행운이었다.

그는 이미 한국 휠체어 육상의 스타이다. 1999년 방콕 장애인 아시안 게임 3관왕, 2000년 시드니 장애인 올림픽 400 ㎙ 금메달을 따내며 국제 육상 단거리를 평정했지만 아는 이는 드물었다. 무관심은 가슴에 응어리를 남겼다.

“금메달을 따도 훈련 여건이나 삶의 질,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나도 가슴에 태극기를 단 어엿한 국가 대표인데,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다니….”

그 좌절을 딛고 다시 택한 길이 마라톤이었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이 된 이후에도 구김살 없는 성격과 스포츠 덕분에 장애를 잊고 살았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남들에게 장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보이자고, 다시 혹독하게 나를 단련하자고 마음먹었어요.”

한 번 풀코스 완주의 희열을 맛보자 도저히 헤어날 수 없었다. 마라톤은 마지막 남은 한 줌의 힘마저 모두 소진케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알아주는 이 없었다.

국내에는 휠체어 마라톤 선수가 40여 명에 불과해 변변한 대회 하나 치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훈련을 위해 월급을 다 털어야 했고 때론 대회 출전을 위해 직장도 포기해야 했다. 그가 대학 졸업 후 귀금속 디자이너, 사회복지사, 생활체육 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기업과 각종 단체에 후원을 요청하는 이메일과 편지만 수백 통 보냈을 거예요. 그래도 연락 오는 곳은 거의 없더라고요.” 이번 대회 출전도 한 후원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산될 뻔했다.

그는 그렇게 22번의 완주를 일궈냈다. 지난 해엔 서울 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에서도 국내 1위, 국제 13위의 성적을 올리면서 휠체어 마라톤의 간판이 됐다.

많은 이들은 장비도 훈련 여건도 열악한 환경에서 이 정도 성적을 내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창단한 휠체어 마라톤 팀의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며 평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훈련장을 찾아 동료 선수들과 땀을 흘린다.

그는 아직 간절한 바람이 남아 있다고 했다.

“마라톤이 열린 날, 베를린은 온 도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리는 화합의 축제였어요. 국내 마라톤은 ‘반쪽 대회’라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국내에서도 휠체어 마라톤의 박진감 넘치는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내일도 마라톤을 향한 그의 아름다운 도전과 질주는 계속된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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