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치인,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도청을 해왔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장비를 이용한 불법감청 흔적이 발견됐으나 누가 누구를 대상으로 도청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국정원 2차 조사결과에 비해 DJ정부 도청의혹의 진상이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폭로 도청문건 일부 자백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최근 국정원 직원 20여명에 대한 조사에서 2002년 11월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폭로한 문건은 국정원이 실제로 도청한 내용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국정원도 26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김영일 총장이 폭로한 24건의 도청문건에는 여야 정치인, 언론사 사장, 국회 출입기자, 기업인 등 사이에 있었던 정치현안 관련 대화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은 여야간 치열한 정치공방의 대상이 됐으나 당시 국정원은 도청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었다. 고소ㆍ고발로 비화한 국정원 도청의혹에 대해 검찰은 올 4월 “휴대폰 도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신건 전 원장 등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하기도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 총장이 폭로한 문건은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를 통해 도청한 내용이라고 국정원 직원들이 시인했다”며 “이번에 도청문제를 털고 가자는 차원에서 진실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국정원은 그러나 정형근 의원이 2002년 9월 폭로한 도청문건은 이번에 직원들이 자백한 내용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R2를 이용한 유선전화와 휴대폰간 통화의 도청이 조직적인 정치사찰의 일환인지, 당시 국정원장과 국내 담당 차장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한나라당에 도청내용을 유출한 국정원 직원이 누구인지, 정형근 의원 폭로문건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조사 중이다.
국정원 도청테이프 확보 이와 별도로 검찰은 추석 연휴 전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전직 중간 간부 집에서 실세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인사의 대화내용이 담긴 도청테이프를 확보했다고 26일 밝혔다.
검찰은 이 테이프가 불법으로 도청한 전화통화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제작 및 유출 경위를 확인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도청내용을 유출한 국정원 내 조직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권교체기에 국정원 개혁에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보험용’으로 도청을 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참여정부 국정원이 합법 감청과 도청을 구분하지 않고 서둘러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도청행위 자체를 부인해온 DJ정부 전직 국정원장들 주장은 근거가 극히 취약해 졌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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