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액정화면(LCD),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DM) 등으로 세분화한 삼성전자 사업부들의 ‘각개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업별 독립채산제에 따라 각기 실적 챙기기에 나서면서부터 한 집안 식구 사이에서도 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총괄사업부들은 최근 몇몇 분야에서 타 사업부의 경쟁 업체와 긴밀한 제휴에 나서는 등 사안에 따라 내부 협력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이끄는 선봉은 정보통신 부문.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휴대폰을 내세워 삼성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정보통신총괄부문은 자사 반도체부문의 최대 경쟁사인 하이닉스 제품을 휴대폰용 부품으로 대량 구매하고 있다. 또 300만·500만화소 카메라폰에는 계열사 삼성테크윈 대신 일본 경쟁업체 팬탁스 제품을 쓰고 있다.
반도체 부문은 최근 애플의 인기 MP3 ‘아이팟 나노’ 신제품에 자사의 첨단 플래시메모리를 제공하는 전략적 제휴로 최근 MP3 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삼성전자 DM부문으로부터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원성을 샀다.
업계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GB당 6만원 이하(업계 추정)에 플래시메모리를 공급하면서 애플이 200달러 미만의 초저가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며 “기능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애플에 맞서온 삼성 MP3 제품으로서는 적잖은 타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리주의 행보’는 DM 부문도 마찬가지다. DM 부문은 최근 LCD TV 세계 1위 업체인 일본 샤프로부터 LCD 패널을 공급 받아 유럽에서 수요가 치솟고 있는 37인치 LCD TV를 출시했다. 이는 삼성전자 LCD 부문이 추진중인 ‘32-40-46인치’ 전략에서 벗어나 경쟁 업체 표준을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의 내부 경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우선 계열사 간 상호 배려와 신의를 중시하는 한국적 대기업 문화에 익숙한 재계 인사들은 “지나친 성과주의”라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임원은 “전자 내에서도 부서별 실적에 따라 부하 직원들의 연말 성과급이 크게 다르다”며 “타 사업부 사정 봐줄 입장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외국계 기업 관계자들도 “글로벌 기업에서는 사업별 독립채산제와 경쟁 시스템이 당연한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내부 경쟁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허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최근 전 사장단 앞에서 ‘2류 부품으로 1류 제품 만드느라 고생이 많다’고 말했다”며 “이는 삼성 부품이라도 1등이 아니면 쓰지 말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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