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들은 도덕적 질병관을 갖고 있었다. 평소의 악행이 쌓여 질병으로 발현되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윤리개념과 의학개념이 미분리된 인과관계다.
그 무지함을 타파하고 질병에 대한 객관적 원인을 탐색한 최초의 의사가 바로 저 유명한 히포크라테스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질병을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사체액(四體液) 사이의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 이론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노력은 선각적이었다.
이유가 분명치 않은 고통은 실제보다 더 힘겹게 느껴진다. 원인불명의 희귀병은 환자와 의사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공부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못한다’고 많은 부모들은 근심한다. 그러나 ‘공부를 못한다’는 결과의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중층적으로 얽혀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부’라는 단어는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두뇌활동을 두루뭉실하게 지칭한다. 공부의 메카니즘을 단계별로 상상해보자. 먼저 준비단계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정하는 일에서 심신의 환경에 대한 점검까지 집중된 학습을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방해 요소가 제거된 후에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 없는 마구잡이식 학습은 효율성을 갖추기 어렵고, 노력에 비해 결과도 형편없다. 그러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도 수업을 듣는 기본자세와 요령이 미진하다면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배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열심히 수업을 듣고 훌륭하게 복습까지 마쳤다하더라도 정작 시험 당일 날 공부한 내용을 온전하게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일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원인에 집중되어 있다. 떠먹여 주는 공부에 익숙한 나머지 아무런 자발성이 없는 학생도 있었고, 욕심은 많은데 공부에 체계성이 부족한 학생도 있었다.
혼자 공부할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도 채 못되는 것이 병통인 아이가 있었는가 하면, 시험지만 받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는 학생도 여럿 보았다. 이유는 다른데 부모님들은 그냥 다 싸잡아 ‘우리 애는 공부를 못한다’고 얘기한다.
어떤 이유로 학생이 공부를 힘겨워하는지부터 찾아내야 한다. 그 주체는 물론 학생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의 학습과정을 총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이 작업에 부모님들도 동참한다면 더 다각적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학습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공부의 전 과정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만이 학생의 힘겨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진단이 구체적이지 않을수록 방안을 찾아내는 일에 무리수가 생겨난다.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 유명 학원을 하나더 추가하는 처방을 내리는 경우가 가장 흔한 오류들 중의 하나다.
예리하지 않은 칼날은 환부뿐만 아니라 주변의 생살까지도 상하게 만든다. 더구나 공부를 못하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 답답함을 학생의 성실함이나 품성에 대한 도덕적 회의론으로까지 확장한다면, 질병의 원인을 죄악이 만들어낸 사필귀정으로 치부해버리는 고대인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김송은 학습전문가ㆍ에듀플렉스 목동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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