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이틀째인 23일 국감 실시를 위한 회의도 끝내 열지 못하는 파행 사태가 벌어졌다.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는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 동의안 상정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계속 점거하는 바람에 결국 무산됐다. 통외통위는 추후에 외교부 국감을 실시키로 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비준안 상정 방침을 확인한 민노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9시부터 회의실로 몰려들었다. 소속 의원 10명과 보좌진 등이 총동원됐다. 오전 10시15분 임채정 통외통위 위원장이 국감을 시작하기 위해 회의실에 입장하자, 민노당 관계자들이 위원장석을 둘러쌌다. 이어 임 위원장을 위원장석에 앉히기 위해 호위해 밀고 들어가려는 우리당 관계자와 막아 선 민노당 보좌진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고 고성, 욕설도 난무했다. 난투극 일보 직전의 분위기였다.
아수라장 속에 임 위원장은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이게 무슨 일이냐. 너무 한다"고 소리를 치며 장내 정리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원장석 빼앗기 다툼은 10여분간 계속됐고, 결국은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에 임 위원장은 국회 경위들에게 의원을 제외한 각 당 관계자, 취재진 등을 회의실에서 몰아낼 것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또다시 사람들이 뒤엉켜 심한 드잡이가 벌어졌다. 옷이 찢어지거나 넥타이가 풀린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민노당 의원들의 회의실 점거는 계속됐다.
오후 들어 각 당 간사 사이에 물밑 협의가 진행됐지만, 쉽사리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당 의원들은 "비준안 상정 후 조속한 처리로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일단 상정한 뒤 정부의 협상력 부족과 후속 대책 부재를 따져야 한다"며 민노당을 달랬다. 임 위원장은 "6월부터 네 번이나 상정을 연기했는데 비준안 통과가 늦어지면 관세화로 가게 돼 쌀 농가는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민노당은 "연말 홍콩 도하개발어젠다(DDA) 회의 결과를 보고 쌀 협상 비준안을 논의해도 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오후 9시15분, 임 위원장이 여야 의원들 앞에서 "더 이상 국감을 진행할 여건이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이날 상황은 종료됐다.
한편 감사 파행 때문에 이날 저녁 예정됐던 한-오만 외무장관 회담도 하루 연기됐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원래 감사 도중 회담에 참석했다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감사가 시작되지 않아 이를 기다리느라 회담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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