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집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쏟아져 나오지만 ‘인생이 그림 같다’ 같은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 생활을 제법 했고, 지금은 미술ㆍ문화재 전문출판사 학고재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손철주씨의 미술 맛보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글맛이 일품이다.
구어체로, 너나들이체로, 또 때로 서한 형식으로, 구연 형식으로 문체는 달라도 한결 같이 날렵한 단문(短文) 속에 알배기 마냥 말뜻이 단단하다.
전작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로 이미 자신만의 미술 감상법을 선보인 그는 이 책에서 한국화, 중국화,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 서양화, 팝아트, 헬무트 뉴튼의 사진까지 또 한번 미술계를 종횡무진한다.
동양에서 ‘산수를 그리는 것은 지도를 제작하고자 함이 아니다’며 서양의 풍경화와 달리 보면서 한국화나 동양화의 독특한 멋을 찾는 노력이 특히 눈에 띈다.
강희안과 정선, 심사정 그림 속의 물을 각각 ‘보는 물’ ‘듣는 물’ ‘노니는 물’로 분류하거나,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에서 ‘저밀도의 감흥’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길어올리는 식이다.
‘사시장춘(四時長春)’ 같은 신윤복 그림을 두고 전통시대 남녀가 연정을 연출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림에 곁들여 풀어놓는 연적, 막사발, 토우, 옹기, 기와, 서원 이야기에는 전통미에 대한 저자의 애착이 살아있다.
그는 ‘미술이 예전보다 어려워진 건, 오스카 와일드가 비꼬았듯이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 짓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바깥에 보이는 사물에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며, ‘아는 대로 떠들어라’고 말한다. 믿음대로 그도 정말 아는 대로 떠들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변설(辯舌)은 가히 수준급이다.
그렇다고 마냥 듣기 좋은 이야기만 풀어놓은 건 아니다. 요즘 미술계를 비판하는 몇몇 대목은 예리하다. ‘쉬운 그림 찾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그림이 지휘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이 점점 거만해진다. 쉬운 그림은 보는 이를 겁주지 않는다. 그것은 미덕이다. 이 미덕을 현대미술가들은 흘러간 옛 노래의 3절인 양 복창하지 않는다. 가소로운 일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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