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삼성 면죄부 주기’의혹을 받고 있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개정안의 부칙 작성 경위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하자 그 배경과 파장에 정치권과 재계의 민감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가 안기부 X파일 등으로 여권과 삼성 간에 긴장이 생기는 시점에 이뤄지고 있어 “참여정부와 삼성의 밀월이 끝난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낳고 있다. 사실 정부와 삼성 사이에 이미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삼성 계열 3개사가 6월말 계열 금융ㆍ보험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데다 검찰이 안기부 파일 문제로 삼성 간부들에 대한 조사를 강행했기 때문.
이런 상황은 정부가 그 동안 재벌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삼성과는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것과는 대비된다. 2003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21세기 한국의 비전이자 희망”이라고 예찬한 뒤 양측 간에 오고 가는 말들은 아주 부드러웠다.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로 내정되고, 금년 3월 노 대통령이 삼성 리움 미술관을 찾아가 이 회장과 환담한 뒤로는 참여정부와 삼성 밀월이 더욱 힘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와 삼성의 관계가 ‘밀월’로 설명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청와대가 금산법 경위 조사까지 나서자 이를 단순히 오비이락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정치적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금산법 부칙 작성 경위 조사는 정치적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민단체 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경위를 알아보고 있을 뿐”이라며 “삼성 때리기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삼성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조사를 하면서 정치적 판단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최소한 삼성그룹 영향력의 지나친 확대를 우려하는 국민 여론을 외면할 수 없어 조사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우려섞인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삼성 관련 의혹을 덮어둘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위기에 처한 참여정부가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최대 재벌에 각을 세우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적 복선 여부를 떠나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켜놓고 다시 조사하는 것이 자가당착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런 저런 이유로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 5% 초과지분 처분 소급적용 여부가 핵심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29일 입법 예고됐고, 올해 7월1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금산법은 원래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이었으나 1997년 3월 명칭이 변경되면서 금융기관이 특정 회사 주식을 20%이상 소유하거나 5%이상 소유하면서 계열사들과 함께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당시에는 법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고 2000년에야 위반한 임원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금융기관에게는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다가 처벌의 실효성이 없다는 여론에 따라 이번에는 ▦한도 초과 지분의 의결권 제한 ▦금감위에 시정명령과 해당 임원 해임권고 요구권을 부여하고 ▦주식처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매일 장부가액의 1만분의3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삼성그룹 봐주기 논란의 핵심은 법률의 소급적용 문제. 참여연대와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 등은 새로운 개정안에서 규정한 초과지분 처분명령 대상에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25.6%)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7.25%)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 계열사 지분 한도를 초과해 보유하는 위반 행위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개정안의 처분명령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의지만 갖고 있으면 충분히 소급 적용할 수 있는데도 삼성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 단체들은 법률안을 소급 적용할 경우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재경부와 금감위는 초과 보유 지분 처분 명령 규정을 삼성카드가 98~99년 취득해 보유중인 에버랜드 지분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개정 법률의 과도한 소급적용은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또 금산법이 제정된 97년 이전부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해서는 처분명령은 물론이고 의결권 제한도 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입법예고에 없던 ‘삼성 봐주기’ 조항이 최종 개정안에 포함됐다는 지적이 있으나, 법제처 심사과정에서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별도 조항을 만들어 풀어 쓰는 것이 좋겠다’는 지적을 받아 추가한 것으로 입법예고에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재경부 임영록 금융정책국장은 “삼성에 특혜를 부여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재벌을 봐주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되지만 일부 주장대로 특정 재벌을 겨냥해 법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게 정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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