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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2인극 '목화밭의 고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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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2인극 '목화밭의 고독속에서'

입력
2005.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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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중략) 사려는 사람을 마주한 팔려는 사람의 겸손함으로, 욕망하는 사람을 마주한, 소유한 사람의 겸손함으로 말입니다.” 찾아 온 손님의 마음을 눅이고 욕망을 부추겨 도박판에 끌어 들이려는 딜러가 은근한 말솜씨로 그를 꾄다.

그러나 이 손님, 결코 녹록하지 않다.“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딜러에게 뇌까린다. 게임, 즉 삶의 법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내면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리는 언어다.

극단 산울림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라는 형식을 빌어 인생 자체를 이야기한다. 갖가지 매체와 오락물이 쉴새 없이 틈입해 들어 오는 요즘 연극의 대세를 정면에서 거스른다. 1시간 30여분 간 펼쳐지는 무대에서 객석은 거만하던 딜러가 무너져 손님에게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마는 일대 역전극을 지켜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객석은 언어의 성찬을 누리게 된다. 두 사람은 한 번 말문을 열면 족히 2~3분은 족히 걸릴 언어를 쏟아 내며 설득하고 윽박지르고 회유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사유의 즐거움이 주어진다.

딜러의 말마따나 “유일하게 존재하는 경계란 사는 자와 파는 자의 경계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 은밀한 욕망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그 경계는 불확실하다. 산전수전 겪은 손님은 딜러에게 말한다. “당신은 마치, 밤에 사람들이 잠자러 집에 돌아갈 때 팔꿈치를 잡아끌며 ‘오늘 저녁 여자 있어요’라고 귀에다 속삭이는 스트립쇼 가게 안의 삐끼 같다”고.

연극을 언어의 예술로 환원시키는 작업에서 최대의 공을 세운 사람은 두 중견 배우, 김철리(52ㆍ손님)와 박용수(50ㆍ딜러)다. 강의와 연출 작업을 겸하는 점에서 배우로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김씨는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언어의 연극에 항상 목말라 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된 지 10년, 준비 소식을 듣고 연출자에게 매달린 지 1년만에 따낸 배역이다. 한편 ‘고도를 기다리며’ 등에서 열연을 펼쳤던 박씨는 “일상의 욕구가 내재해 있는 난해한 대사를 빌어 객석과 소통의 성취감을 누리고 싶다”고 했다.

원작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는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연극계의 신화처럼 받들어 지고 있는 인물. 불우한 천재의 삶을 보내다 41세이던 89년, 에이즈로 죽은 그에게 연극이란‘시간과 공간’속에 홀로 떨어진 개인이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를 일약 세상에 알린 이 작품도 그러므로 고독의 외침이다.

이 무대는 원로 연출가 임영웅(72)씨와 아들 수현(41ㆍ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씨가 연습실을 달구며 함께 만들어 낸 첫 공동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리 연극사에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파리4대학에서 수학 중이던 수현씨가 1994년 프랑스 배우들의 연기로 처음 접한 뒤, 부친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2002년 귀국하자마자 석 달 걸려 번역해 냈다. 7~9월 까지 산울림극장 연습실에서 벌어진 리딩(대본 읽기) 작업에도 동참하는 등 언어의 맛을 무대화 해 내는 데 애를 썼다.

10월 5~11월 6일까지 산울림소극장. 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3시 6시 30분, 일 오후 3시.(02)334-5915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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