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조카의 책장을 구경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같은 국내 창작동화부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같은 외국 창작동화, 과학책 등 다양한 책 사이로 ‘데미안’, ‘흙’이 눈에 띈다.
나는 묻는다. “야~ 데미안도 있네. 저걸 읽었어?” 조카의 대답이 신통찮다. “저거, 고모는 고등학교 때 읽어도 어렵던데 너는 천잰가부다.” 치켜세우는 발언에 순진한 조카는 금방 넘어온다. “아니에요. 엄마한테 속아서 읽었어요. 엄마가요, 읽다 보면 알까기가 나온댔거든요.”
‘데미안’에 알까기라니.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유명한 구절을 알까기라 둘러대며 책을 읽게 만든 엄마에게 요즘 독서논술공부 시키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에게는 너무 지나친 책 선정이니 그만두던지 선생님을 바꾸라는 이 시누이의 조언에 애 엄마는 자기도 마음에는 안 들지만 팀 짜기도 어렵고 다른 선생님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변명을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자기 갈등이 시작되던 사춘기 시절에 읽었던 책을 중년에 다시 읽는 맛은 각별했다. 어린 날에는 맑고 분명하며 조화로운 세계와 무섭고 몽롱한 혼돈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싱클레어에게 나를 일치시키면서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데미안처럼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비록 책에서는 싱클레어가 전쟁에서 폭격 맞아 죽는 순간 데미안으로 상징되는 이상의 세계에 도달하지만 범인의 일생은 한 세계를 파괴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의 반복인가 싶었다.
나의 독후감이야 어쨌든 결론은 일부 독서능력이 좋은 학생들은 예외겠지만 이 책이 초등학교 5학년이 읽기에 적합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독서에 이어 논술이 강화되면서 독서논술지도를 받는 아이들의 연령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점점 내려간다. 그런데 책 선정 담당자들은 어려운 책을 읽어야 공부가 되고 진정으로 ‘죄와 벌’이나 ‘레 미제라블’과 같은 작품이 중학생에게 적합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아기들에게 젖을 주다가 밥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이유식을 먹이면서 마음의 양식인 책읽기는 왜 갑자기 굳은 밥으로 건너뛰는가.
그리고 중학교 때 정석수학을 선행학습 하느라 머리가 과포화상태인 아이들에게 독서마저 마음으로 느끼기도 전에 따지고 분석하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는 걸까. 쉬운 책에서도 얼마든지 논제를 끌어내고 토론할 수 있다. 그리고 따져서 읽기 전에 빠져서 읽는 즐거움부터 느끼도록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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