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ㆍ31 부동산 종합대책이후에도 시중자금이 여전히 갈 길을 못 잡고 있다. 부동산 투자 등을 위해 단기수신 상품에 예치돼 있던 대기성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아직까지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좀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달들어 자금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머니마켓펀드(MMF)의 대규모 자금이탈.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15일까지 MMF에서 3조7,660억원이 빠져나갔다.
MMF는 환매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 투신권의 대표적인 초단기 수신상품이다. 언뜻 보면 부동자금이 줄어든 것 같지만, MMF에서 이탈한 자금은 은행권 초단기상품인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으로 몰리고 있다.
MMF에서 주로 운용하는 3개월물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채권의 금리가 상승, 채권값이 떨어져 MMF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확정수익률을 보장하는 MMDA로 부동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달 15일까지 은행 저축성예금은 4조5,592억원 급증했다”며 “최근 은행권이 고금리 특판예금을 내놓고 있지만 저축성예금중 정기예금은 빠지고 있고, MMDA 편입액은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단기 부동자금이 MMF에서 MMDA로 자리만 바꾼 채 여전히 금융시장 주위를 맴돈다는 얘기이다.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이동도 눈에 띨 정도는 아니다. 같은 기간 투신권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5,950억원 늘어났다. 그러나 주식형 펀드는 8ㆍ31 대책 이전인 8월중 증가액만도 1조2,926억원에 달한다.
특히 시중금리가 올라 채권가격이 하락하면서 같은 기간 채권형 펀드에서만 9,870억원이 빠져 나갔다. 새로운 자금이 주식시장에 본격 편입됐다기보다 채권 투자 자금이 주식으로 이동한 셈이다.
하나경제연구소 신동준 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거라는 관망심리가 부동산 대기자금에 작용하고 있고, 금리와 경기흐름도 여전히 시중자금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장금리 인상압력이 계속되면서 채권에 투자하기도 주저되고, 1,200포인트에 육박한 주가가 앞으로도 계속 상승할지,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도 선뜻 들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주식시장에 대한 ‘큰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큰 변화는 없다.
우리은행 강남 PB센터 박승안 팀장은 “주식시장에 전혀 관심이 없던 고액 자산가들이 최근 주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고객들은 한달에 2,000만~3,000만원씩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는 등 서서히 투자에 나서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부동산 투자에서 주식 투자로 갈아타는 중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강북PB센터 서춘수 지점장도 “세금이 올라간다는 데도 집을 팔겠다는 고객들이 없고, 큰손들의 여유자금이 주식쪽으로 크게 옮겨가려는 움직임도 아직은 적다”고 말했다.
결국 부동산투자 대기자금 등 부동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부동산관련 법안의 입법과정 등에서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경기 회복이 본격화한다는 확실한 신호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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