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21일로 두 달째를 맞았다. 검찰은 그 동안 극도의 보안 속에 정중동(靜中動)의 수사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 사건이 박용오 전 회장측의 진정으로 촉발된 가족분쟁의 성격이라는이유에서였다. 진정서 내용만 믿고 섣불리 덤볐다가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그러나 수사가 중반을 넘어선 지금은 초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검찰은 이미 그룹 위장계열사인 동현엔지니어링을 통해 조성한 20억원과 두산산업개발이 조성한 100억원대 비자금의 실체를 밝혀냈다. 전직 그룹 총수의 내부자 고발이라 진정서의 신빙성이 매우 높을 것이란 예측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 검사 6명 전원이 투입돼 비자금 조성의혹이 제기된 계열사 태맥, 넵스, 뉴트라팍 등에 대해 동시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얻었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검찰이 2일 단행한 두산산업개발 압수수색에서 그룹 내부의 비밀 자료를 통째로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두산그룹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까진 사건의 양 당사자 의견을 모두 들은 뒤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사법처리 여부를 가리는 고소사건 처리의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수사초기 핵심 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주요 피내사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통상적인 기업비리 수사와는 다른 모습이다. 2003년 서울지검 형사9부의 SK수사는 그룹 본사 압수수색부터 최태원 ㈜SK 회장 구속까지 불과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신병처리는 조사를 다 하고 나서 일괄 결정하거나 막판에 결정할 것”이라며 두산 사건을 통상 고소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방침을 밝혔다.
때문에 범죄증거가 인멸되거나 감춰진 다른 비리는 손대지 않고, 진정 내용의 책임자 몇 명만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봉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수사가 특수부를 능가하는 ‘조사부식 기업수사’의 모범사례로 기록될지는 다음달부터 소환이 예상되는 총수 일가의 사법처리 여부를 보아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찰은 진정서에서 비자금 관리자로 지목된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박용성 회장의 장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의 금융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지며 소환 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침과 달리 총수 일가가 소환과 동시에 사법처리된다면 SK수사 때와 같이 곧장 비자금 사용처 수사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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