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풍경에서 잠자리를 빼놓을 수 없다. 추석에 고향을 다녀온 분들은 고향집 울타리나 베어 놓은 볏단에 사뿐히 내려앉아 청명한 가을 햇살을 즐기는 잠자리의 모습이 삼삼할 것이다. 앙증맞은 고추잠자리가 푸른 하늘을 떼지어 나는 모양은 한가롭고 평화스럽다.
어린 시절 잠자리를 붙잡아서 꼬리에 지푸라기를 꼽아 날려 보내며 놀기도 했는데 잠자리가 인간에 매우 이로운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든다.
▦ 잠자리의 주요 먹이는 모기다. 잠자리 1마리가 하루 평균 200마리의 모기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여름 한 철 1㏊의 공간에서 무려 100㎏의 모기를 잠자리들이 먹어치운다는 통계도 있다. 물속에서도 수채라고 불리는 잠자리의 유충이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잡아먹는다.
말라리아, 일본뇌염, 황열병 등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연간 200만 명이 사망한다니 모기는 인류 최대의 적이라 할 만하다. 잠자리가 없었다면 인류는 모기 때문에 벌써 멸종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는 잠자리에게 크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 3억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한 잠자리는 1억년 뒤에 출현한 모기에 비해 진화적으로 훨씬 원시적인 날개를 가졌다. 모기는 초당 250~500회의 날갯짓이 가능하지만 잠자리는 30~50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잠자리가 모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비행술 덕분이다.
잠자리는 자기 몸무게의 20배(20g)에 해당하는 순간 가속이 가능하다. 최신예 전투기의 순간 가속력이 9g임에 비하면 엄청난 가속력이다. 또 전진후퇴가 자유롭고 공중에서 정지비행이 가능하며 발달된 겹눈도 모기 사냥에 적합하다. 그래서 잠자리는 느릿느릿 날다가 순식간에 앞다리로 모기를 낚아채 잡아먹을 수 있다.
▦ 서울 서초구가 내년부터 양재천, 우면산 생태공원 등에서 잠자리를 대량으로 키워 모기를 퇴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살충제 등 화학약품을 살포하는 연막소독은 인체에도 해롭고 이로운 곤충까지 없앰으로써 생태계를 교란하는 부작용이 있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활용한 모기 퇴치는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도심에 잠자리들이 유유히 나는 풍경까지 선사할 수 있다.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니 여러 모로 이득이다. 서초구청은 양재천에서 함평 나비축제처럼 잠자리 축제도 계획하고 있다니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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