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중국 배낭여행 도중 우연히 프랑스 젊은이들과 3일간 동행하게 됐다. 프랑스 월드컵 등 가벼운 화제를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초보적인 애국심이 발동해 “한국에도 좋은 곳이 많으니 한번 방문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은 위험한 지역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했으나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당시에는 ‘제3세계에 무관심한 서구인 특유의 무지의 소치’로 치부했지만, 이후 돌이켜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는 “심심치 않게 총격전이 일어나고 무장 잠수함이 출몰하며 해전(海戰)이 벌어지는가 하면 핵무기 개발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지역”이 아니었을까.
남북 대치상황이 50년 이상 이어진 탓일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북한’을 거의 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다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분야를 막론하고 외국인의 ‘한국’ 분석에는 필연적으로 ‘북한’이 결부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거액의 자금을 맡기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북한 변수에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2년 이후 북한 이슈로 종합주가지수 하락폭이 컸던 5일 중 외국인이 순매도에 나선 게 4일이나 됐다. ‘북한에 최소 8개의 핵무기가 있다’는 미군의 추정이 알려진 지난해 4월29일에는 순매도액이 7,732억원에 달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9일 ‘북한의 핵포기’라는 빅뉴스가 전해졌다.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고, 장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의 상향조정과 국내 증시의 재평가를 촉진할 것이라는 긍정적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변화무쌍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 체결 당시만 해도 누가 ‘2차 북핵 위기’를 예상했을까.
설사 이번 합의로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린다 해도 ‘북한 리스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돌발악재의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6자회담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북한 관련주에 대한 ‘묻지마 투자’ 열풍이 부는 것을 보고 노파심에서 해보는 말이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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