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오자 “냉전구조와 동북아 정세불안의 핵심요소가 걷힘으로써 한반도가 탈냉전화하고 평화회담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결단하고 회담 타결을 이끌어낸 한국 외교의 승리”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이는 상당 부분 사실에 부합한다. 그간 한국의 역할은 컸다. 대북 중대 제안으로 4차 6자 회담의 돌파구를 열었고, 회담 내내 북미 양측을 실질적으로 견인했다.
북미는 핵심 쟁점이던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과 경수로 문제에서 한국측 입장을 징검다리 삼아 합의를 이뤘다. “지난 100년간 우리가 국가적 운명이 걸린 문제를 우리가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20일 정 장관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자화자찬은 너무 이르다. 이번 공동성명은 곧바로 북한 핵 폐기를 이행하자는 합의가 아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미국은 북한과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한다는 ‘말 대 말’의 약속이다. 핵 동결 및 폐기의 이행을 약속한 1994년 제네바 합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행문제를 다룰 11월 5차 회담부터는 더 험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세불안의 핵심요소가 걷힘으로써’라는 정부의 판단은 성급한 감이 있다. 전문가들은 핵 폐기 이행문제가 백지로 남아 있어 변수가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북한은 20일 공동성명의 문구를 “경수로를 지어줘야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할 수 있다”며 한미의 성명 해석을 부인했다. 북한은 19일 공동성명 발표 후 기자회견을 갖지 않고, 보도도 일절 하지 않은 채 움추려 있다가 반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아직도 타결 사실 자체에 취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이영섭 정치부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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