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008학년도(현 고1 대상)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된 이후 학교와 학원에서 ‘논술’이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대학별로 실시하는 논술고사가 당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선안 발표 1년이 되가는 요즘 논술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 학교와 학원을 직접 방문해 수업을 같이 들으며 학생들과 강사, 교사들을 만났다.
■ 강남 C학원
3일 밤 서울 대치동 학원가. 토요일이었지만 ‘사교육 1번지’답게 학원가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재학생 전문 C학원은 밤 9시부터 3시간 동안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수강생 15명은 대부분 강남 8학군 학생들과 외국어고 학생들이었다.
1교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절대선과 진리에 관한 토론. 강사는 1주일 전에 데미안에 대한 5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인터넷으로 제출토록 했다. 한 학생이 성선설 성찰 자아 초인 등 어려운 용어를 동원하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동료 학생들과 강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강사가 ‘기술적’ 정리에 들어갔다. ‘죄와 벌’ ‘시지프스 신화’ 등 다른 문학작품이나 인문학 이론을 거론했다. 유사한 주제에 폭 넓게 ‘써먹을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하고 기출문제를 소개했다.
2교시는 다른 강사에 의해 ‘부조리’란 주제의 강의가 이어졌고 학생들이 써 온 글을 고쳐주는 1대 1 첨삭지도는 대학원 출신의 전문 강사가 맡았다. 토론수업과 주제강의, 첨삭지도를 하는 강사가 역할분담 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던 것. 한 강사는 “논술은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학문이라 국어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며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지만 논술교육은 당분간 학교가 학원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학원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학생은 “논술이 중요해진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며 “기껏 제시문을 주고 글을 써오라는 건데 이마저도 1대 1 지도는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은 “반 학생 절반이 학원을 다니고 있다”며 “학교에서 논술은 안 된다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상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학원은 주 1회, 1개월에 12시간 수업을 하고 수강료 20만원 받는다. 여름방학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 인천 B학교
추석 연휴를 앞둔 15일 오후 6시. 인천 서구 일반계 B고 도서관에서는 1학년 여학생 15명이 특기적성 교육의 하나로 논술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 학교는 1학기에 24명의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에는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15명에게 매주 화ㆍ목요일에 2시간씩 논술수업을 하고 있다.
담당 교사는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 준 ‘개똥녀 사건’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한 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학생들이 주장의 근거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안돼 있어 이를 다잡아 주는데 교사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어 ‘님비현상과 핌비현상’ 주제로 학생들이 써 온 글에 대해 일일이 문장의 주술관계와 맞춤법 등을 지도했다. 분위기는 진지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1대 1 지도를 해주는 점이 가장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수업 열기에 비해 교사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사들이 ‘새로운 영역’인 논술수업 맡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데다 수업 노하우도 없어 업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담당 교사는 주제 찾고 자료 정리하는 데만 하루에 2~3시간을 투자하고 특히 첨삭지도 때는 학생 1명의 글에만 보통 30분씩을 할애하고 있었다. 담당 교사는 “체계적 연수를 받은 적도 없고 마땅한 교재도 없어 교사 개인의 열정과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학교보다 학원이 훨씬 낫다는 선입견은 있지만 교사들이 지도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학교는 특히 변두리에 위치해 있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전교생의 10%가 넘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도 많다. 한 학생은 “학원비가 만만치 않아 지금처럼만 가르쳐 주시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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