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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31> 신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노래의 사도, 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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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31> 신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노래의 사도, 닐 영

입력
2005.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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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의 밥 딜런’이라 불리는 가수 한대수는 정작 밥 딜런에 대해 떨떠름하다. 한대수는 밥 딜런의 지나친 자기현시와 명민한 쇼비즈니스 감각을 못마땅해하면서 밥 딜런과 상당히 유사한 듯 아주 많이 다른 닐 영을 곧잘 언급한다. 한대수는 닐 영에게선 고통과 진실성이 보인다고 한다.

이때 고통과 진실성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화의 문제이다. 음악을 들으며 공감 내지 감동을 느끼는 건, 요컨대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라는 걸 온몸으로 깨닫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대수의 얘기는 옳다. 이러한 동조는 논리나 정황에 따른 합의가 아니라 각기 삶의 연혁을 고스란히 얹은 언어 이전의 공감이다. 내가 닐 영에게서 듣는 것은 내가 꼭 노래하고 싶었거나 느껴보고 싶었던 것에 대한 은은한 이명과도 같다. 닐 영을 들을 때 나는 닐 영의 삶이 들려주는 소리에 잠시 기대어 나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텅 비워 놓는 한 순간, 노래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편안한 벤치처럼 잠깐동안 내가 의탁하고 있던 닐 영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그가 떠난 자리엔 늘 비슷하게,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짓누르며 살 수밖에 없는 현재 삶에 대한 처연한 자각만 남아있다.

그런 자각이 그의 허청허청한 몸을 자꾸 떠밀어서일까. 서부 개척민의 방랑벽과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유로운 정신과 타인에 대한 천형과도 같은 연민을 한 몸에 품은 채 닐 영은 도무지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신용카드를 태워 연료로 쓰고/ 진실의 대지를 향한 편도표와 가방을 손에 든 채/ 보도블록이 모래가 되는 곳을 향해 떠났다/ 내 친구들은 모두 나를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 닐 영 노래, 'Thrasher' 4절 중에서

내가 듣기에 그의 노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건 노래와 연주, 심지어 녹음하는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사를 인용하긴 했지만, 가사는 일면적인 편견만 강화할 여지가 있으므로 오히려 부차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이톤의 비음으로만 일관하는 닐 영의 목소리가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닐 영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불편하고 엉성한 목소리에서 진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닐 영의 노래는 결코 잘 훈련된 발성법으로 흉내가 가능한 노래가 아니다. 무턱대고 콧소리를 내며 따라 한다고 그 특별한 감칠맛을 되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닐 영의 목소리는 악보에 찍힌 음을 단어에 얹는다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선택한 단어들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색깔을 소리 속에서 발견해낸다. 때문에 그의 노래를 따라 하다 보면 온음으로 불려야 할 소리가 반음 위거나 아래 톤으로 불균등하게 흔들리는 등 관성적인 평균률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자주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발음은 굉장히 정확하다. 하지만 그 정확한 발음 또한 마지막 음절에 다다라 혀 깊숙이 말리면서 다음 발음의 첫 음절을 톡톡 쏘아내는 듯한 독특한 내재율, 단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음색의 번짐에 의해서 자연발생하는 은은한 라임이 있다. 그런 특별하고도 육감적인 발성을 들을 때마다 나는 크고 습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황소가 생각난다.

닐 영은 황소가 여물을 씹듯 무심하게 그 자신의 고통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곱씹는다. 그때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작용하는 삶의 법칙이자 삶의 조건이 된다.

누구는 고통의 무게에 함몰되어 자기가 지려놓은 오물더미에 속절없이 파묻히고, 누구는 고의로 고통을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다른 향락 속에서 스스로를 망각할 때, 황소를 닮은 닐 영은 고통을 고스란히 몸에 묻힌 채 길을 떠난다. 목적지는 ‘진실의 대지’라지만, ‘보도블록이 모래가 되는 곳’이란 정작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닐 영은 꿈 속에서나 가능할 것을 현실의 바깥으로 나가 찾으려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진정 노래로써 되찾고 떠남으로써 깨닫고자 하는 건 고통을 경작하여 희망을 낳고 세상의 전면적인 악의와 직면해 자기자신의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을 언제나 이전과는 다른 존재, 그러면서 지금 이전과 이후를 포괄하는 통일체로서 향유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은 말라붙은 擁江骸?같다는 걸 닐 영은 선험적으로 아는 듯하다. 쇠똥을 제대로 말리기 위해선 태양볕과 바람 앞에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최상 아니겠는가. 그의 노래는 쇠똥과 태양이 만나 피워 올리는 매캐하고 고소하고 질긴 삶의 훈향으로 작용한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 가수의 삶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인명정보란에 수록된 일반적인 사실 말고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닐 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게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면 고통 운운하며 그의 노래를 왈가왈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오히려 내가 그를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태평양 건너 사람이 어찌 내가 느낀 감흥과 생각과 꿈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언뜻 놀랍게 여겨지지만, 사실 이건 하나도 놀랍지 않다.

전혀 다른 언어지만, 언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내가 그에게서 느끼는 공감은 말로 쓰여진 내용의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드러나는 형식과 그것에 반응하는 내 태도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닐 영의 수많은 노래 중 가사를 완전히 알고 있는 곡은 한 두 곡이 될까 말까다. 그렇지만, 가사를 전혀 몰라도, 닐 영은 듣는 그 순간 어느덧 나 자신이 되어 있다. 때문에 그의 가사를 굳이 캐내어 알고 싶지도 않다.

정작 말이 하고 싶어 못 참겠으면 그의 멜로디에 맞춰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설사 멜로디가 바뀌거나 리듬이 엉켜도 무슨 상관이랴. 그와 나는 이미 공감의 멀고 깊은 터널 속에서 각기 스스로 자유로울 뿐인데.

희한한 건 영어에 그닥 밝지 않은 내 귀에도 닐 영의 노래 중 어느 구절은 일부러 알지 않으려 해도 듣는 그 순간 (단어의 순차배열을 점검하는 머리가 아니라)마음 속에서 해석이 다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숱한 외국가수의 노래를 들었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닐 영은 말이란 단지 하나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흡사 돌멩이를 던져 멀리 있는 사람의 몸을 자극하듯 무심하게 소리를 내뱉는 그는 인간 언어의 바깥에서 맴도는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짐승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의 마음이 실제로 자신의 귀를 통해 들린다는 사실을 경험해 본적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삶에 대한 기본인식을 바꿔놓을 정도로 엄청나게 감동적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황소라 표현했듯,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황야의 늑대(또는 이리)라 부르듯, 그가 인간 아닌 다른 종의 속성을 특별하게 공유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혼종(混種)적 존재가 순전한 인간보다 더 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반복하건대, 신이 아니라 신에 가까운 존재. 그리하여 항상 신의 버림과 채찍질(모두에 가사를 인용한 노래 ‘Thrasher’는 ‘채찍질하는 자’라는 뜻이다)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존재. 그 비천함과 고귀함이 상존하는 존재는 늘 울고 있다. 그런데 그 울음은 눈물이 없는 울음이다.

그가 흘려야 할 눈물은 태양과 바람과 독수리와 길이 대신 흘린다. 거꾸로 말하면 닐 영은 눈물이 없는 그것들에게 눈물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듣는 건 우주의 그 무심하고 무감한 천연엑기스이다.

194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닐 영은 본래 기타리스트로 음악활동을 시작했었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그가 활동했던 밴드는 버펄로 스프링필드와 크로스비 스틸즈 내쉬 앤 영 등이었다.

두 밴드 공히 포크록의 전설로 통하는데, 젊은 시절의 닐 영은 독특한 음악적 센스와 아이디어로 애당초 불륜과도 같았던 전자악기와 포크 송의 합일을 이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닐 영은 하드록과 포크, 컨트리 등 장르에 연연하지 않는 신선한 음악들을 줄창 발표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육십갑자를 훌쩍 돌아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젊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던 나의 친구들은 마치 히딩크 감독을 ‘히동구’라는 국적불명의 명명법으로 칭하듯 닐 영을 ‘늘영이 형’이라 부른다.

그의 젊음은 헬스클럽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솔직함과 열정에 대한 용기,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에 의해 유지되고 관리된다. 그건 젊고자 하는 발악이 아니라 젊음과 늙음을 포괄한 삶 전반에 대한 긍정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젊지만, 마치 물가에 앉으면 흐4?물소리가 되고 숲 속에 있으면 나무 한 그루가 되는 언어 이전의 삶을 터득해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작아진다. 여전히 수줍음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수확의 계절에야 비로소 겸허해지는 인간의 본래적 속성과 여전한 가능성과 미래를 듣는다.

은근한 속삭임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그의 노래 ‘Harvest moon’을 들으며 음미하는 이 가을의 바람이 내겐 유난히 각별하다. 두 주 전에 환갑을 맞은 내 엄마랑 그가 60년 동안 우주의 같은 궤도를 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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