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부분 시각을 꼽을 것이다.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 획득하는 정보의 80% 이상이 시각을 통해 얻어진다고 한다. 시각은 예로부터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과 사색의 대상이 돼왔다.
그렇다면 과연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물을 보고 인지하는 과정을 신체의 생리적 측면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자. 시각의 출발점은 사물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가시광선이다. 보통 태양광이나 조명등에 의해 쪼여지는 빛 중 일부가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빛이 없다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눈에 들어온 빛은 우선 각막과 만난다. 각막은 우리 눈을 보호하는 가장 바깥 조직으로, 빛을 모아 망막 상에 맺히도록 굴절시키는 렌즈의 역할도 수행한다. 각막을 지난 빛은 홍채로 둘러싸인 눈동자(동공)를 통과해 수정체를 지나간다.
홍채는 매우 유연하게 수축되거나 확장될 수 있는데 이 움직임에 의해 눈동자의 크기가 바뀌면서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절된다. 밝은 환경에서 눈동자의 지름은 약 3.5㎜로 줄어들지만 컴컴한 방에서는 8㎜까지 확장돼 최대한 많은 빛을 받아들인다. 인종에 따라 바뀌는 눈의 색깔은 바로 홍채의 색에 달려있다.
수정체는 모양체라는 강한 근육에 의해 형태가 바뀌면서 빛의 초점을 미세하게 조정, 망막 위에 정확히 맺히도록 한다. 수정체가 유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먼 곳의 사물과 가까운 곳의 사물을 모두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수정체 모양을 변화시키는 근력이 떨어지면 초점을 망막 상에 정확히 형성시키는 것이 힘들어진다. 흔히 노안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망막은 굳이 비유하자면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분포해 있어 입사되는 빛을 전기적 신호로 바꿔 준다. 시세포는 원추세포(cone cell)와 막대세포(rod cell) 두 종류가 있는데 밝은 곳에서는 원추세포가 활동하고 어두운 환경에서는 훨씬 민감한 막대세포가 빛을 감지한다.
이 시세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빛 세기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밤하늘의 매우 희미한 별빛에서부터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대낮의 태양빛과 같이 매우 밝은 빛도 감지할 수 있다.
시세포에서 만들어진 전기적 펄스 신호들은 시신경 섬유 다발에 모아져 뇌로 전달된다. 뉴런으로 불리는 신경세포들은 끊임없이 점멸하는 전기적 신호를 뇌로 운반한다.
이 신호는 뇌의 뒤쪽 영역인 후두엽의 대뇌피질인 시각피질에서 처리돼 영상으로 전환되고,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에서 과거의 정보들과 비교ㆍ판단된 후 전체 대뇌 피질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리적 과정이 인간의 시각능력을 다 설명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인간은 눈을 감고도 마음 속에 시각을 만들어 낸다. 꿈을 꿀 때 사람의 눈이 매우 활발히 움직인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50대 남자가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한 경우가 있었다. 그는 보는 능력은 회복했지만 본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거리를 가늠할 수도 없고 자신이 본 사물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도 판단할 수 없었다. 오직 손으로 사물들을 만져보고 느낀 후에 사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눈에서 뇌로 시각 정보가 전달되는 생리적 과정과 인간의 마음과 기억에 의해 가공 판단되는 과정은 상보적으로 시각능력의 두 기둥을 이룬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정이 아닐까?
한림대학교 전자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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